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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우리민족의 종전을 남이 왜?

2018-06-26     경인매일 회장 德岩 金均式

68년 전 한민족끼리 총구를 들이대며 시작된 6·25전쟁이 과연 남북의 일만은 아니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그칠 것 같았던 전쟁이 3년이나 길어지다 보니 죄 없는 피난민들만 목숨을 연명하기 급급했다.


앞서 하나였던 조선은 1943년 12월의 카이로선언에서 적당한 시기에 독립을 보장한다는 조건부였다.

이때 잘린 한반도의 허리는 군사적인 편의에 따라 38선을 경계로 남북한은 미·소 양군에 의하여 분할, 점령되었으며 양분된 국토는 자국민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48년 남한만의 선거를 기점으로 분단국가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이후 소련은 북한에서 철수하고 미군도 500명 정도만 남기고 철수하게 된다. 이후 1950년 6월 25일 남북이 판이하게 다른 조건에서 시작된 전쟁은 16개국의 군대가 파병되었지만 인정사정없는 전쟁의 포화는 소중한 인명을 무차별 빼앗아가는 처참함이 이어졌다.


같은 민족간 벌어진 전쟁은 중국의 개입으로 38선을 넘나들며 그칠 줄 몰랐다. 세월이 68년이나 흘러 지금도 북미간 정상회담으로 전쟁을 잠시 쉬는 휴전에서 공식적인 종료를 의미하는 종전을 향하고 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이 오고간 내용 중 종전반대라는 소식은 제 3국의 간섭이 한민족 평화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의 집 싸움에 이웃집에서 말리진 못할망정 펌프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전쟁포로와 피난민들의 어려움이 극심했을까.


죽음과 기아에 대한 인간본연의 불안감이 3년간이나 이어졌으니 이런 난리를 치는 동안 중국이나 일본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수많은 문화재가 불타고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여건은 회생불가의 상태로 망가졌지만 국군은 98만 7000여 명 민간인 140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냈고 북한도 92만 6천명의 군인과 200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남의 땅에 와서 목숨걸고 싸운 유엔군도 15만 7827명, 북한을 지원했던 중공군도 92만 1836명이나 죽고 다쳤다.

집계에서 빠진 인원을 감안하고 대충만 합해 봐도 5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셈이다.


이 와중에 졸지에 행방을 알 수 없이 헤어진 약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은 여전히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생전의 만남을 학수고대 하고 있다.


총성이 멎은 지 65년이나 지났으니 당시 겨우 가족을 기억할만한 10살짜리 꼬마도 75살이 고령이 되어 눈물만 글썽인다.

정부는 2015년 10월 이후 3년 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1차 상봉자 추첨을 진행했지만 총 5만7000명의 지원자 중 500명을 1차 선발하고 최종 대상자에 선정되려면 568.9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상봉을 포기하고 신청조차 하지 않은 인원을 감안하면 여전히 이산가족의 생이별은 현재 진행형이다. 국제 정세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은 북한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느니 분노와 화염 어쩌고 하며 항공모함을 한반도 주변에 어슬렁거리게 했다가 정상회담에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국의 이익과 맞물린다면 적도 아군도 없다는 계산이다. 자본이 소리 없는 무역전쟁의 총알이라면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북한이 양다리를 걸치며 외교를 하는 동안 언제 일본이 뒤통수를 칠는지 알수 없는 게 국제 정세다.


급변하는 국제정세가 요즘처럼 긍정일 경우는 괜찮지만 반대로 부정일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실전으로 확산되어 언제 이판사판 벌어질지 모르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남북한이 졸지에 전쟁무대가 된다며 500만 명 정도의 사상자만 내고 끝날까.

아니다 현대전은 과거마냥 고지를 점령하는 수준이 아니다.
어쩌면 회생불가의 한반도가 될지도 모른다.

누가 말려주고 도와줄까, 천만에 말씀이다. 인도주의나 비폭력주의를 주장한다고 떠들어봐야 일시적 동정은 얻을 수 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국의 이익 앞에서는 누구도 양보하지 않는다.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종전을 만류했다는 소식은 여전히 68년 전 저지른 아픈 역사에 대해 뻔뻔함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