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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의 기자수첩] 아버지의 뒷모습

2023-05-15     박미경 기자
▲박미경기자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월 13일 홍사용 문학관에서는 가정의 달 특집으로 신달자 시인의 미니 강연과 더불어 박제광의 시 노래, 그리고 시인과 주방장의 밴드 공연이 있었다.

2부에서는 가족을 대상으로 모집한 손 편지 쓰기 공모를 통해 당선된 시민들의 편지 낭독 시간이 있었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손 편지 쓰기 공모는 컴퓨터로 작성한 편지가 아닌 손 글씨로 쓴 편지만 해당되었다. 낭독자는 두 사람이며 소장용 편지와 새로 작성한 편지로 나누어 선정했다. 점점 핵가족화되는 세태에서 손 편지를 낭독으로 듣는 시간은 감동스러웠다. 

손 편지 당선인 중 50대 주부의 편지 한 구절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너의 외할머니는 여고 때 미술부 활동을 하시고 글도 잘 쓰셨지만 한 번도 세상에 발표한 적이 없으셨지. 전업주부였던 할머니와 계약직으로 일하다 경력 단절녀가 된 나, 그리고 현재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너. 이렇게 이어지는 우리 모계 형콩의 끊기지 않는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이 편지를 마친다.”

한 편 오월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상은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뒷모습보다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남자들은 자기 표현하기를 금기시해서 겉으로는 강하게 보이나 내면적으로 더 아픈 모습이 많을 수 있다.

한 아버지가 딸이 큰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가는데 본인더러 운전을 하라고 해서 당황했다고 한 이야기를 들을 적이 있다. 본인은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인데 운전을 하라고 해서 미칠 것 같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버지는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으로 강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도 나약한 한 사람의 인간임은 분명하다. 

몇 년 전 한 정치인이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들고 들어가는 뒷모습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좋지 않은 일로 연루되어 본인이 그동안 쌓아왔던 명예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화가 미쳐 수난을 당할 때 그 마음이야 어떠했을까 싶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최고의 직장을 가졌지만 그도 한 사람의 가장이자 바람에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그 자식의 입장에서도 그간 들인 노력 전체를 부정 당해야 하는 입장이니 얼마나 마음 아플까 생각해본다. 

나의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을 생각해 본다. 엄마와 손을 잡고 성당을 가려고 걷는 모습이 내 기억 속의 모습에 선명하게 찍혀있다. 구부정한 셔츠차림의 뒷모습이었다. 

당시 경제적 이유로 고민이 많았던 시간이어서 아버지로서 시름 많은 모습이었다. 나는 전적으로 가정을 책임져본 적이 없어서 가장으로서의 무거움을 잘 모른다.하지만 세상의 많은 가장들은 많은 부분을 걱정과 시름 속에 살고 있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뒷모습은 마음을 아리게 한다. 

얼마 전 남편의 생일에 쓴 딸아이의 편지가 우리를 울렸다. 남편이 통풍이 와서 이따금씩 가다 쉬고 가다 쉬고 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딸에게는 그 모습이 위태로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어버이는 속절없이 늙어가고 대부분 자식보다 떠나가야 하는 현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오늘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의 뒷모습에 고요한 경배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