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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아파트가 가져온 편리함과 삭막함

2024-05-02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가수 윤수일이 부른 ‘아파트’는 1982년 국민가요 1위로 많은 사람들의 아파트를 향한 꿈을 대신 노래했다.

기초공사를 시작으로 철근 레미콘을 타설해 건설하는 아파트. 대한민국 아파트 역사는 1930년 일본 기업 미쿠니 상사가 경성 주재 일본인 직원들을 위해 지은 미쿠니 아파트가 최초다.

이 아파트는 9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옛 건물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한 채 주거용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1932년 지어진 ‘충정아파트'지만 연도별로 보면 미쿠니에게 밀린다.

이후 1958년 서울 성북구 고려대 담장 옆 언덕에 지은 종암 아파트가 5층짜리 3개 동에 총 152가구로 수세식 변기가 집안에 설치됐고 입주자들은 정치인, 대학교수, 문화예술인 등 상류층에 속하는 거물급 부유층이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아파트 바람은 돌풍을 넘어 광풍이었고 지금도 재산 증식의 수단은 물론 혼수품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러한 분위기는 점차 그 위력을 더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첨단 건설기술이 압축된 주거 공간이자 자산 증식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통로다.

이제 주소를 물어도 어느 아파트 살고 있는지 이름만으로도 빈부격차를 알 수 있으며 대부분의 이름이 한글에서 영어로 바뀌었고 경비, 기반 시설, 커뮤니티 등 다양한 옵션들이 아파트 가격을 부채질했다.

구조물은 철근 콘크리트로 동일하지만, 건설하는 장소 및 부가 시설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가장 싼 아파트는 전북 익산면에 위치한 ‘태양 아파트' 13평짜리가 630만원에 거래됐고 전남 고흥군 도화면에 위치한 뉴코아 아파트도 9평짜리 10채가 650만원에 거래됐다.

지방만 그런 게 아니라 수도권도 동두천시 광암동에 위치한 한성 아파트 15평이 1800만원에 거래됐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100대 1이 넘는 청약 비율이 지방으로 갈수록 미분양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서울 아니면 사람 살 곳이 안 된다는 것처럼 보인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당연히 서울로 몰리는 수도권 집중 현상인데 대기수요가 많다 보니 공급부족이 빚어진 결과다.

그렇다면 왜 서울로 몰릴까.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이 가속할수록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집값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비싼 아파트는 얼마나 될까. 경기도 하남시 감일지구 아파트 무순위 청약은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6월 청약 신청이 진행된 서울 동작구 흑석자이는 약 20평 면적 1가구에 82만9,804명이 몰렸는데 분양가만 해도 6억4,650만 원이다. 평당 3천 만원도 넘는데 그래도 몰리는 건 6억에 분양받아 되팔면 14억 원 가까운 가격을 받을 수 있으니 벌 떼처럼 몰리는 것이다.

흑석자이 84.94㎡의 경우 10만4,924명이 몰렸고 분양가는 9억5,650만 원이지만 매매가는 15억9,500만 원으로 당첨되는 순간 6억 원을 버는 셈이다. 강남의 모 아파트는 3가구 청약에 100만 명도 넘는 신청자들이 몰려 서울의 아파트는 실제 로또나 같은 형국이다.

이처럼 무순위 청약 당첨 시 수억 원의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최근 무순위 청약 물량에 청약자들이 앞다퉈 몰리는 분위기다. 이쯤 되면 아파트는 주거공간이라기보다 재산 증식의 수단이라고 보는 것이 더 당연하다.

이미 지방의 빈집 약 300만 채는 공짜로 줘도 사는 사람이 없을 만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주거문화의 변화는 모든 국민들의 생활방식까지 모두 변형시켜 놓았다. 아파트의 특징상 마당이 없고 옆집과의 왕래도 없으며 편리함의 극치를 달리다 보니 일반 연립이나 빌라,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은 쳐다도 보지 않는 것이다.

좁아도 좋으니 고시원과 오피스텔을 살더라도 집합건물을 선호하며 서울과 가까워야 살맛이 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전 국민들이 거주하는 모든 주택의 형태가 모두 아파트로 바뀔 것이고 생활방식과 의식 수준 또한 동일해질 것이다.

어떤 모습일까. 일단 사생활 보호에 대해 철저해지겠지만 이웃과의 대화나 소통은 일절 금지다. 자칫 엘리베이터에서 아는 척이라도 했다가는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수도 있고 어설프게 미소라도 보냈다간 성적 수치심을 느낀 여성들이 신고할 수도 있으며 외부 침입자들을 잘못 단속했다가는 경비원들을 탓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인가 모 아파트에서는 택배 기사들의 트럭을 외부에 정차시키자 택배회사가 입주민들과 한판 전쟁을 벌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주차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층간소음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도 아파트, 아파트를 외치는 것은 막을 방법이 없다. 사람들이 성냥갑 같은 건물에 촘촘히 틀어박혀 살면서도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편리함이 가장 큰 이유다. 과거처럼 쓰레기를 버릴 일도 없고 마당 쓸 일도 없으며 크고 작은 일들을 이웃과 함께 나눌 일이 없기 때문에 편리한 것이다.

된장 고추장 담근 장독대 대신 마트에 가면 없는 게 없다. 이 같은 현상이 점점 심해지면 10년쯤 지난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누린 편리함이 잃어버린 행복감보다 더 크다면 다행이지만 한번 익숙해진 아파트 문화를 화목한 사회, 나눔의 사회, 서로 돕는 훈훈한 인정을 기대하는 사회로 가기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살아보자, 아파트. 문만 닫으면 문밖에는 누가 죽어도 쳐다도 보지 않을 삭막한 사회풍토가 당연한 것처럼 자리 잡을 것이고 이를 보며 자라나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며 어떤 인성을 갖출지도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