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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신나는 현충일

2024-06-05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6월 6일 현충일. 목요일, 다음날인 금요일 월차만 쓰면 6, 7, 8, 9 연속 4일짜리 황금연휴다. 이미 유명 관광지의 숙박, 고급식당, 해외여행까지 돈 쓸 만한 곳이면 예약이 완료된 상태이며 일부지만 강아지 호텔까지 예약이 꽉 차버렸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들이 보시면 아 우리 후손들이 나의 희생으로 호강하니 보람이 있다고 하실까. 아니면 은혜도 모르는 후손들을 보며 괜한 희생을 했구나 하실까. 전자든 후자든 망자가 무엇을 알까마는 그래도 보고 듣고 자라는 후손들의 생각은 어찌할 것인가.

자라는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를 답습한다. 일단 빨간 날은 노는 날이구나, 왜 노는지 현충일이 무슨 의미를 지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날짜만 잘 잡으면 가족끼리 즐겁게 지낼 수 있는 휴가가 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이미 휴전된 지 71년. 당시 총을 든 군인들은 적어도 90세가 넘어가는 만큼 대부분 사망했다. 이제 남한도 북한도 총구를 겨누던 당시의 상황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어느 한쪽이 원한다고 될 일인가.

오늘은 국가 위기 상태에서 지난 동족상잔처럼 전쟁이 재발했을 때 과연 과거처럼 자신의 희생을 담보로 싸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점이다. 전사 후 후손들이 까맣게 잊고 산다면 그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각자의 생존보다 나라의 안위를 먼저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전쟁이 발발해야 알겠지만 그럴 젊은이들이 과거 식민지 시대나 6·25전쟁처럼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까.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지구상에는 지금도 포성이 멎질 않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의 화마에 상처 입은 시가지와 사람들의 아비규환이 생생하게 전 세계로 보도되고 있다.

전시에 징집은 기본이다.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징집 전이었거나 동원예비군 연령까지 일단 군인으로 복귀해 총을 들어야 한다. 전쟁터에서 사망하는 것이 별반 뜻밖의 일이 아닌 이상 모든 군인의 목숨은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파리 목숨일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 전쟁이 나도 그러할 것이다.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기다. 군의 사기는 무기에도 있지만 전우들 간에 단결해 적을 섬멸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사기의 근본은 호국 의지와 구국의 결단,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안위를 지키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포함되어 있다. 어느 한순간 총탄이 날아들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본들 망자는 망자다.

그나마 현충일이면 유족들이 찾아주지만 나머지 무연고나 사설 묘지에 잠든 호국영령들의 영혼은 누가 위로해 줄까. 현충일이면 국립묘지 말고 나머지 무덤은 아예 찾는 사람조차 없다.

한마디로 죽은 사람만 서러운 것이다. 이래서는 후손들이 보고 배울 게 없는 나라가 된다. 빨간 글씨가 왜 노는 날인지와 적어도 자신의 선친이 아니더라도 충혼탑을 찾아 향이라도 피워볼 줄 아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자식들과 함께 동행해 불과 5분도 안 걸리는 이 의식을 갖추고 나면 질문을 받게 된다. 누구의 제사냐고, 누구의 묘가 여기에 있느냐고, 아버지는 어린 아들 앞에 반 무릎으로 눈높이를 맞춘 다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기 계신 분들이 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누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희생을 치렀느냐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보고 자란 아이들과 아무 생각없이 부모 따라 휴가만 즐긴 아이들의 생각 차이는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필자의 의견이 청승맞은 걸까. 아니면 시대에 뒤떨어진 한낱 망상에 불과할까. 교육이란 이런데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필자는 황금연휴까지 청승 떨란 뜻이 아니라 할 것은 하고 즐길 것은 즐기라는 뜻이다.

아이들이 부모가 가자고 함께 따라나서서 이런 교육을 받는 것도 한때다. 조금 크면 가자고 해도 친구가 먼저이고 그 다음은 이성친구라도 있다면 말을 듣지 않는다. 6일은 제69회 현충일이다.

필자가 권하고 싶은 여행지 중에 경북 영덕군 전승공원과 전승기념관을 손꼽는다. 1950년 9월 15일과 19일 사이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벌어진 학도병들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벌인 성동격서의 격전지다.

동쪽에서 난리를 치고 서쪽을 친다는 성동격서. 그 작전으로 인해 학도병 772명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전선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상당 기간 병사 기록이 없어 유해조차 찾지 않았던 장사리 전투학도병들.

어디 장사리 뿐일까. 전국 곳곳에서 3년간 벌어진 전쟁으로 소리 소문 없이 유명을 달리한 국군 전사자들. 요즘은 자신의 조상 무덤도 찾지 않는 시대가 됐다. 알지도 못하는 남의 무덤에 흰 국화를 두고 묵념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우스꽝스럽고 어색할지 모르나 사람이 살면서 해도 되는 실수나 의도적 행위 중 망자에 대한 예를 지키는 것은 어찌해도 괜찮다.

안면 없는 노인이 무거운 짐을 들고 간다면 같이 들어 주던 나라였다. 지금은 너도나도 경계심이 생겨 눈치만 보는 시대가 됐지만 고마운 줄도 모르고 지내는 현 세대들이 일 년에 하루 정도는 뒤돌아보고 무연고 묘지에 꽃이라도 놓을 줄 아는 후손들이 되었으면 한다.

얼마 전 천안독립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 가본 곳이라 낯설진 않았지만 불과 십 년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웅장한 규모에 곳곳마다 순국선열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 제3국에서 관광객이 온다면 보여주고 싶은 곳 1위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순국선열에 대해 깍듯한 예우를 갖추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정신적 자산가치가 온전히 보존되고 있음을 말이다. 설령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도 식상한 먹거리나 볼거리보다 훨씬 더 자랑스러운 곳이기에 함께 동행하며 한글 안내에 설명도 해 줄 수 있는 날이 된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부모로 볼까.

작은 언행이라도 미래를 생각하는 현세대의 주인공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