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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숫자와 판단의 함수관계

2024-06-14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 2, 3, 4로 시작해 무한대로 이어지는 숫자는 십, 백, 천, 만, 억, 조,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으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면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 무량대수와 검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검이란 숫자 1에 0이 72개 붙는 단위인데 1억이 8개 붙는다고 가정하면 상상이 갈 것이다. 숫자 단위는 갈수록 끝이 없는데 대부분 불경에서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아직 대한민국 예산은 조 단위에서 그친다.

오늘은 숫자가 인간 사회에 끼치는 판단과 영향력에 대해 함께 살펴보자. 먼저 숫자는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심지어 잠들어도 관련이 있다. 굳이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몇 시에 일어났는지 출근 시간과 약속 시간은 언제인지, 주차구획 번호는 몇 번인지부터 차량번호, 전화번호까지 숫자가 아닌 게 없다.

카드에 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오늘 날씨는 기온이 몇 도이며 가는 구간 동안 과속 단속 속도제한은 몇 km인지 숫자만 들여다보아야 한다. ATM기 앞에 서면 비밀번호는 몇 번인지와 운전하다 보면 기름 게이지에 남은 숫자와 간혹 구입하는 로또 복권도 번호를 잘 골라야 한다.

지나다가 90% 바겐세일이라는 현수막이 보여 혹시나 하고 방문해 보면 일부 상품만 90%이고 나머지는 받을 것 다 받는 장삿속에 속은 것이다. 뿐일까. 소신 있게 살다가도 허탈할 때 스마트폰을 열어보면 선거 때마다 속출하는 여론조사기관의 지지도 %와 투표하고서도 출구 조사 및 당선 확률에 대한 속보들조차 모두 숫자다.

스포츠 채널을 켜 봐도 종목별 신기록이 숫자이고 일기예보를 보아도 먼바다의 풍랑부터 온도·습도·강수량에 미세먼지 농도까지 숫자이다. 그렇다면 그런 숫자에 대해 체감을 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러려니 하는 것이지 발표한 숫자만큼 정확히 느끼거나 상응하는 대책을 세울 수 없다. 일기예보를 뒤로 하고 바쁜 일상에 누구는 로또를 맞아 29억을 받았느니 누구는 주식을 잘해서 몇 억을 벌었느니 할 때면 자신도 한 번쯤 행운이 따르지 않을까해서 로또라도 사 보면 역시 헛일이다.

수백 만분의 1이라는 낮은 확률에 당첨을 기대하는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허망한 일인지 알면서도 덤비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도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관심 가져야 할 게 자녀들의 성적표다.

수능을 앞둔 아이들의 성적표 또한 숫자로 평가되는데 자녀들 입장에서는 수능 성적표에 적힌 숫자가 인생의 전부일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1990년대만 해도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아닌 무선호출기 일명 삐삐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옆구리에 차거나 손목에 차고 있던 삐삐는 숫자만으로 모든 대화가 압출되어 수신하던 시절이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들의 두뇌는 가히 천문학적 지능지수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지나 건강하던 사람도 수시로 혈압과 혈당 체크를 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오니 의사들의 전유물이었던 환자의 건강 체크가 이제 누구나 볼 수 있는 숫자로 등장했다.

혹시 우리는 시중에 넘쳐나는 숫자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산술적 잣대에 얽매여 정작 더 나은 정보를 습득할 기회가 차단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는 숫자를 존중하되 숫자에 휘둘리는 삶에서 조금씩 벗어나자.

비단 국어에 기대지 않더라도 산수에 사로잡혀 무엇이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얽매이지 말자. 숫자보다 더 정확하고 현실적인 표현법이나 판단의 기준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숫자로 먹고사는 통계청이나 여론조사 기관들의 발표가 표본오차를 정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기준이고 이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각자의 판단이다.

특히 당선 확률, 출구조사, 통계청,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가 전부라고 판단한다면 다소의 오차가 있지 않을까. 독자 여러분이 기억하는 숫자의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통장의 비밀번호.

스마트폰의 비밀번호. 그리고 나머지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일자나 숫자가 나열될 것이다. 혹여 그런 순위에서 밀리는 숫자 중 강아지 입양보다 부모님 주민등록번호나 생신 날짜나 휴대전화 번호라도 기억하면 어떨까.

만약 그럴 리도 없겠지만 치매로 집을 가출했다면 무슨 근거로 찾을 수 있을까. 혹여 남들 눈이 있으니 찾는 척하다 말 것인지 진정 찾으려면 무슨 번호를 기억하는지 밝은 날 행정복지센터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하기 전까지 막막하다면 돌이켜 볼 문제다.

무릇 어떤 일이든 순서가 있는 것인데 연예인 생일은 알아도 정작 소중한 가족의 생일은 망각하는 사회라면 이는 도덕적 결함 상태다. 이제 우리는 망각하고 흐려져 가는 인간성 회복의 복구를 위해 숫자보다 글로써 이웃과 사회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기적 분위기에서 계산적 이해타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숫자를 피할 수 없지만 숫자에 얽매여 무형의 분실을 치렀다면 이제는 다시 복구할 수 있는 정신적 자산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특히 숫자로 검은 게 흰 것처럼 판단의 오류를 일으킨다면 그 숫자, 차라리 없는 게 더 낫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더욱 그러하고 사회복지를 구분 짓는 데서 복지의 사각지대를 밝히지 못한다면 당연히 그러하며 실효성 없는 예산편성으로 소중한 혈세를 낭비한다면 더더욱 그러한 것이다.

지금처럼 저출산과 일자리 창출의 공백을 뻔히 알면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되풀이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경로든 기적의 부활에서 기적의 추락을 면하기 어렵게 된다. 오늘은 숫자로 장난질하는 정책이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