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팅 업체

[덕암칼럼] 미리 가보는 인구의 날

2024-07-11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오늘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 각국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인구 문제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 날이다. ‘세계 인구의 날’은 인구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날로써 매년 7월 11일이다.

한국은 2000년대 이후 저출산이 지속되자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이 제정되었으며, 2011년 이 법이 개정되면서 7월 11일을 인구의 날로 정했다. 인구 증가는 전 세계의 중요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국제연합은 1987년 7월 11일 세계 인구가 50억 명에 도달한 것을 기념해 세계 인구의 날로 정했다. 1960년대에 급격한 인구 증가로 전국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던 한국은 이제 출산율이 너무 저조해서 걱정이다.

그냥 걱정이 아니라 심각한 재앙 수준이다. 그럼 저출산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해 보자.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본다면 시대 변화와 생물학적 변형이 가져온 결과다.

먼저 시대변화는 전 세계 국가 중 출산율이 높고 낮음의 차이가 어떤 나라에서 발생하는지부터 보면 알 수 있다. 가령 인도나 아프리카의 경우 피임 확률도 낮고 임산부의 연령 또한 낮다.

결혼이라는 풍습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마치 포유류가 무작정 생산하듯 인구가 급증하는 것을 통계상 볼 수 있다. 간혹 아프리카 일부 국가의 가난한 나라 어린이들이 구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마른 체격에 뼈만 앙상하게 남아 날파리들이 온몸에 들끓는 장면은 이미 익숙할 만큼 자주 본 장면이다. 물론 아래는 도움 주실 분들의 연락처가 굵직하게 나오는 게 과연 누가 얼마를 냈으며 얼마나 걷혀서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물론 100원을 거둬 얼마라도 썼겠지만 모금 하는 가운데 방송 광고비, 인건비, 해외 체류하는 동안 동원된 모든 비용은 제외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남았을까. 한두 곳도 아니고 자연재해나 심지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협력 기금이라며 모금하기도 한다.

불신이 가득한 현실을 감안할 때 더욱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기금 마련이 오히려 더 쉽지 않을까. 이쯤하고 인구가 늘어나는 후진국의 경우 여성들의 인권과 사회활동은 매우 열악하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고 시대변화에 따른 출산율 저조가 이를 증명한다.

아직도 히잡을 쓰고 할례의식을 받아들이는 일부 국가들 여성들의 현주소를 보면 결코 출산율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만약 서구 국가나 한국 여성들에게 히잡과 할례를 권장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누가 주장하든 사회적 매장은 보나 마나일 것이다. 다음 생물학적 변형이다. 인간과 모든 동물의 번식은 교미를 거쳐야 하며 씨도 뿌리지 않았는데 열매가 맺을 리가 없다. 다시 말해 씨가 뿌려질 환경이 척박해지고 암컷과 수컷의 기본적인 본능을 인간 스스로가 옥죄거나 변형시켜 이 같은 생물학적 변형이 가져오는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가령 꽃의 꿀을 벌이 날아와 채집하는데 필요한 것은 벌의 노력도 있겠지만 꽃 자체에서 꿀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벌의 왕성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꽃이 뿌리째 벌을 피하며 돌아다닌다면 과연 수정이 가능할까.

당초에 꽃이 제자리를 지켜도 꽃만의 권리와 가치가 존재했었다. 이 같은 자연현상을 인간 스스로가 남녀 평등 또는 인권을 내세우며 흔들어 놓은 것이 화근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이 같은 변형은 심각하다.

한국 또한 벤치마킹할 것과 검증할 것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인 서구 문명의 오류가 낳은 재앙을 지금 겪고 있다.

세계 어느 국가나 임신과 출산의 자유도 있고 결혼과 이혼도 가능하지만 앞서 강조했듯 여성이 출산의 고통이 있고 남성이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존을 책임져야 한다면 그 기본이 어느 정도 지켜졌을 때 출산과 사망의 굴레가 기본을 유지하는 것이다.

진정한 평등이란 여성도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운전대를 잡으며 술에 만취되어야만 평등이 아니다. 군인, 경찰 등 한때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분야에 여성도 함께 공존해야 평등이 아니다.

과연 남성의 극한 직종에도 여성들이 진출하는지 돌아보면 전혀 아니다. 그러한 직종은 무수히 많지만 지면상 줄이고, 여성이 남성과 모든 면에서 무조건 같아야 한다는 평등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정작 보존되어야 할 여성만의 공간과 영역의 가치가 소리 없이 멸실된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

한때 여성은 약자의 대표적인 상징이자 신비감도 있었고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안방의 주인으로서 집안의 모든 권리를 독점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바깥일은 간섭하지 않으며 남편과도 상호 간 경어로 대화를 나누는 등 마님으로서의 권위는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위치였다.

일반 서민들도 여성은 약자이자 위험한 경우 아이와 함께 보호대상자의 1순위였다. 험한 일은 남성들의 몫이었고 특히 성과 관련된 여성들이 신변문제는 지금보다 더욱 엄격하게 보호되거나 안전도가 높았다.

반대로 여권신장을 외치는 2024년 여성들의 현주소가 조선시대 보다 나아졌을까.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 물론 환경 측면으로 얻은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잃은 게 더 많다고 본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이미 기본부터 틀어졌다.

위의 두 가지 이유만으로 인구문제가 해결되기에는 너무 늦었다. 꽃이 벌을 피하고 꽃이 벌을 선택하고 꽃이 벌과 교미에서 하라 말라의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세상이라면 결코 번식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런 부작용이 가장 위험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제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인구정책, 이미 늦었다. 이대로 조용히 멸종되거나 늙은이들이 판을 치다 더 이상 그럴 사람도 없는 공포의 도심 거리가 눈에 선하다.

바람 불면 흙먼지만 날리는 서울 거리의 황량한 모습이 얼마 가지 않아 당연한 미래의 자화상이 될 것이다. 꽃과 벌의 위치가 달라진 이유만으로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알면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전부의 문제지만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