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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제2의 이산가족 북한이탈주민

2024-07-18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이 3년을 넘은 1953년 7월 27일 휴전으로 멈춘 지 71년이 지났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아비규환이 된 천지는 살고 보자는 기본적인 목표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1·4 후퇴를 비롯해 낙동강 전선을 최후 방어선으로 버티던 국군의 난세에 피난민들만 처참한 생활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굶주림과 피폐해진 전쟁의 후유증은 불과 얼마 가지 않았다.

남·북한은 전쟁 이전이나 이후나 서로 으르렁거리며 38선(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총구를 겨눈 세월 속에 경제, 국방, 이념, 사회구조도 모두 다른 길을 걸었다. 간혹 금방이라도 통일이 되어 한민족이 하나 되는 기적 같은 기대도 있었지만 결국은 이래저래 갈라지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했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 알 수 없는 전쟁터의 험악한 환경은 생명을 부지하기도 바빴으니 언제 일가친척과 가족의 상봉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헤어진 가족들이 전쟁 이후에도 혹여 만날까 기대했던 것이 71년이 지난 것이다.

꼬마였더라도 80세 전후의 노인이 됐고 어쩌면 살아생전 다시는 못 볼 처지가 자명한 것이 현실이다. 헤어진 가족들의 생사는 그 누구도 찾아주지 못했다. 하지만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오전 4시까지 이어진 138일간의 방송은 전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을 모두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주제곡을 배경으로 KBS 특별 생방송으로 보도됐던 당시의 이산가족 찾기는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서로 찾게 해주는 교량 역할을 했다. 총 10만 953건의 신청자 중에 5만 3,536건이 방송되어 1만189건의 가족이 상봉했다.

외신들도 이 소식을 실시간 전 세계 매스컴을 통해 공개 방송했고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세계인의 찬사를 받았다. 이후 세월이 흘러 방송되지는 못했지만 이산가족을 찾는 사람들의 바람은 휴전의 후유증이 아니라 살기 위해 북한을 탈출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들의 이별로 다시 재생됐다.

물론 전 가족이 탈북한 예도 있지만 2024년 3월 기준 34,078명의 탈북민 대부분이 단신으로 혼자 왔거나 서로 모르는 일행들과 제3국을 거쳐 남한으로 온 것이니 사실상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이 된 것이다.

어렵사리 탈북했으니 잘살아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탈북민 또는 다문화 가족으로 불리기도 한다. 문화가 달라야 다문화인데 이는 정정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남·북한이 아닌 제3국가를 다문화라 지칭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북한은 엄연히 같은 민족의 문화적 환경 속에 살고 있다.

특히 언어와 글까지 같은 민족이 북에서 왔다고 이민족 취급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산가족의 날은 음력 8월 13일 추석 전 전날이다. 올해 2024년은 9월 15일이며 올해로써 두 번째다.

때를 맞춰 2024년부터 7월 14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정했다. 전자는 6·25전쟁 이후 발생한 이산가족이지만 후자는 탈북 했던 북한주민을 위해 대한민국이 정한 날이다. 공통점은 둘 다 가족을 찾지 못한다거나 분단의 아픔 속에 한 번 더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탈북민 입장에서는 외신들과 기타 중국 방송을 들으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기도 하고 국내에서도 상당히 비밀스러운 곳까지 TV를 통해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최근에는 일부 탈북민들이 대북 풍선에 남한의 드라마가 내장된 USB를 담아 보냈고 이를 시청하던 북한의 중학생 30명이 처형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뉴스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소식은 또 한 번 북한의 살벌한 인권실태를 보여주는 반면 체제 유지를 위한 강력한 제재가 가해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문제는 한창 호기심이 왕성한 사춘기 시절 USB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열어 봤을 테고 풍선에 담아 보낸 사람은 이를 알 것이라는 점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다. 북한에서 시청 금지된 남한의 드라마를 봤으니 관련법에 따라 처벌받는 건 해당 국가의 국법이고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보낸 것은 보낸 사람의 책임이다.

마치 배고픈 병아리에게 독이든 먹이를 사료를 준 것이나 진배없으니 처형 장면을 본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식이 총살당하는 일의 원인에 대해 얼마나 원망이 클까. 그저 바라는 것은 이런 내용들이 사실이 아니고 겁박하기 위해 부풀려진 가짜 뉴스이길 바랄 뿐이다.

7월 14일 처음 시행된 ‘북한이탈주민의 날’. 3만 명이 넘는 이들의 현실적은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어렵사리 탈출한 만큼 대한민국 사회가 그리 호락호락 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 세상에 어떤 일이든 일장일단은 있게 마련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내 중심도로변의 화려함과는 달리 몇 블록만 뒤로 돌아가면 아직도 허름하고 낡은 건물과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이 수두룩한 게 서울이다.

휘황찬란한 야경의 레스토랑에서 피가 질퍽한 스테이크를 잘라 먹는 일부 부유층의 이면에는 결식아동이 300만 명이 넘고 노인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와 냉기가 살벌한 겨울에 전기장판조차 켜지 못하고 버티는 복지 사각지대가 현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탈북민이라고 이런 환경 속에서 마냥 보호받거나 오냐오냐 해줄 사회는 아니다. 스스로 벌지 않고 게으르면 삼시세끼 밥도 못 먹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얼마 전 탈북민 단체의 대표를 만나 들은 전언에 의하면 대한민국으로 탈북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힘들어한다며 일부 탈북민은 후회까지 한다는 것이다.

반면 자신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잘살 수 있는 곳임에도 나태해진 정신력과 포퓰리즘(Populism) 정책에 길들어 힘든 일을 못하겠다는 것부터가 문제는 아닐까. 게으른 사람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 영국에 데려다 놔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렵사리 탈출한 정신력으로 무슨 일인들 못할까. 대한민국은 각자도생의 경쟁 위주이기도 하지만 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일 못하는 목수가 연장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

복지,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도 잘 마련되어 있고 무엇보다 한국사회에서 보란 듯이 잘 살아야 탈북에 대한 보람이 아닐까. 언제 어떤 식으로 통일이 될지 알 수 없으나 이산가족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배려는 같은 민족으로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챙겨야 할 숙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