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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쉬운 문제 어려운 정답

2024-08-06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애초에 쉬운 문제에 대해 어렵게 정답을 구하려 한다. 빙빙 돌리게 아니라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여성이 출산을 할 때 겪는 고통을 산고라 한다.

과거 이야기를 빌리자면 서까래라 부르는 천장의 목재에 광목으로 길게 끈을 만들어 손목에 걸고 어금니에는 재갈을 문다. 산고에 대한 유일한 대안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우매한 수단이었던가.

그러나 그 시간 아이를 잉태시킨 아이의 부친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 말이 좋아 아버지 정기를 빌고 어머니 몸을 빌려 태어났다.

하지만 아비는 밤새 신이 주신 쾌락은 도가니 속에 헤매고 다닌 것이며 어미는 남편의 소원대로 몸을 맡겼다가 10달 동안 온몸에 태아의 생산을 위한 온갖 고통을 감내하고 살았다.

베이비부머 시대 출산을 원해서, 부부관계를 원해서 임신한 우리네 어머니들이 얼마나 됐을까. 지금처럼 성관계를 원하는 여성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아마도 지금 같은 다자녀 가구는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임신시킬 때마다 산고의 절반이라도 고통을 느끼는 남편의 종족 번식 과정이 있었다면 인류가 멸종했거나 절반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신은 수컷에게 교미 과정에 전율을 느끼는 쾌락을 심어주었기에 지금도 성범죄가 끊이지 않으며 범행의 종류도 상식을 넘나든다.

자고로 남녀 간의 성관계는 남성이 주도적으로 저질렀고 여성이 때로는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성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여성도 사람인지가 남성에게 호감을 느끼고 성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폭력 특별법, 무조건 남자는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공식 안에 모든 수사의 잣대가 남성의 가해 여부에 꽂혀있다. 최근 화성경찰서의 여성 청소년계 담당 형사들의 추궁이 무혐의로 종결된 수사에서 보여 주었듯 이제 남성의 위축은 갈 데까지 간 상태다.

손도 못 잡고 스킨십이나 쳐다도 못 보는 살벌한 남녀 관계를 누가 조성했던가. 하늘을 봐야 별을 따고 꽃을 봐야 나비나 벌이 날아들 텐데 근처에도 못 가게 하면서 무슨 데이트의 접촉을 기대하고 교감을 통해 깊은 관계로 발전할 것인가.

더욱이 흔해진 성의 자유는 개방적인 분위기를 틈타 여성에게 무한 자유, 남성에게 바람이라는 명칭으로 옥죄는 분위기는 더더욱 수컷의 기를 죽였다. 저출산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쉬운 문제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개인 간의 감정이나 사적인 인간관계는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될 일 이었다. 하지만 이런 쉬운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어렵게 만들었다. 암수는 신이 정한 분명한 경계가 있는데 국가가 간섭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남녀가 만나 감정이 맞지 않든 또 다른 이성 관계가 있든 교제 중에는 얼마든지 갈등과 다툼이 있기 마련인데 국가는 여기서도 여성 편을 들며 어디 맞은 데는 없느냐 아픈 데는 없느냐 욕설을 듣는다든가 모욕적인 기분이 들지 않느냐며 온갖 범죄 가능성을 노크한다.

감정에 복받치거나 자신의 문제점을 합리화하려는 여성들에게는 호재다. 부르는 게 값이다. 경찰조사는 적는 게 죄명이다. 남녀 간에 얼마든지 오해를 이해로 만들고 다시 사과하고 오해의 매듭을 풀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이미 경찰조사 과정을 겪는 동안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셈이다.

이쯤 되면 누가 현재의 저출산 위험국으로 만들었는지 대략 짐작이 간다. 애초에 쉬운 문제를 어렵게 풀어간다. 뿐인가. 데이트를 나누는 사이 중에도 이 정도면 결혼 과정이나 결혼 후 이혼할 때 까지 사는 과정은 또 어떠한가.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일진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슨 불만이  많은지 집안에서 사는 자체가 지옥이다. 필자가 오래전부터 강조하던 독수리 아빠의 마음을 오늘 다시 논해 본다. 둥지에서 새끼 독수리 여러 마리가 알에서 부화해 키우는 엄마 독수리가 있었다.

새끼들은 알에서 깨어나 연신 입을 벌리며 먹이를 독촉하고 어미새 또한 아비새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아비 독수리는 알래스카 바다를 멋있게 날아가고 연어를 한 발톱에 움켜쥐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때로는 알프스 푸른 초원 위에 쉬고 있는 토끼를 집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폭우 속에 먹이가 없어 도심의 하수도 복공판을 부리로 젖혀내고 지렁이를 잡아 오기도 해야 처자식들이 굶어 죽지 않기에 최선을 다한다. 또 때로는 사냥꾼의 총에 맞아 날개를 다치기도 하고 인디언의 화살에 맞아 날개에서 피가 흐르기도 한다.

그래도 둥지에 와서는 늠름한 모습만 보여야 하며 등 뒤로 피가 줄줄 흐르더라도 아픈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 며칠째 굶은 아비 새는 맛있게 지렁이를 받아먹는 새끼들의 식사를 보며 흐뭇해 한다.

그게 아비 새의 역할이자 잉태시킨 죄에 대한 형벌이다. 오늘날 종족 번식은 그렇게 유지되어 왔다. 마치 강릉 남대천의 연어가 강을 떠나 태평양을 돌고 돌아 다시 남대천으로 회귀본능을 잊지 않는 것은 번식에 대한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독사가 알에서 깨어나자 제 어미를 잡아먹고 다시 생을 이어가는 걸 아는 어미는 기꺼이 몸을 내어준다.

이렇듯 자연의 섭리를 모두 섬기는데 유독 인간만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사전에 피임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유산을 시키고 그나마 낳은 아이도 눈뜨자 마자 산후조리원에서 다시 어린이집으로 다시 유치원과 학교로 이어지는 어미의 편리함에 대한 컨베이어를 가동한다.

애초에 여성은 아이를 낳아 집안을 지키고 남성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짐을 떠맡았다. 혼자라면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하든 먹고 사는 걱정은 없었을 것일진대 자식을 낳은 죄, 아니 행복으로 아무리 어렵고 척박하고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처자식을 먹여 살리러 길을 떠나는 것이다.

자식을 잉태시킬 때 누렸던 쾌락의 대가다. 무책임한 가장. 살기 위해 둥지를 떠난 암컷, 버려진 새끼 독수리들의 미래는 과연 온전할까. 새들도 이럴진대 인간은 달라야 한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꼴을 보면 만물의 영장 인간의 모양새가 독수리보다 더 나을 게 하나도 없다.

종족 번식, 저출산, 인간의 이 자연스러운 굴레를 제쳐놓고 1억, 2억, 3억 돈으로 대책을 세우려 한다. 남녀가 침대 위에서 사랑하는데 돈이 필요할까. 국가가 이불속에서 이미 돈을 내민다.

이러니 저출산 정책이 실패하는 것이다. 쉬운 문제를 어렵게 풀어간다. 남녀가 손이라도 잡고 눈이라도 마주칠 기회조차 주지 않고서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짓을 하는가. 이제는 여성이 관계를 맺자고 요구해도 확인서를 받아 놓든가 문자 메시지로 합의된 관계였음을 받아놓지 않으면 누구든 성범죄자가 되어 신세를 망치는 세상으로 종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