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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9월의 마지막 날

2024-09-30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또 한 달이 훌쩍 지난다. 추석 명절이 끼어서 그런지 공휴일도 많았고 유난히 무더운 날씨가 역대 최장기간으로 기록됐다.

장마 피해가 어쩌고 온도상승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저쩌고 했지만, 여전히 지구는 돌아가고 시곗바늘도 돌아가니 또 시월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며 그렇게 세월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정가에서는 국회 개원 이후 권력층의 전면전에 많은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의 표적이 되자 현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까지 공개적으로 나왔다. 두 사람에게 사법적 리스크가 발생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난동이나 집단행동이 대외적으로 나올 것이며 이를 저지하고자 경찰과 대치할 국면이 생길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지금까지 조선왕조 500년을 돌아봐도 근대사의 기록을 들춰봐도 조그만 나라가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백성들이야 피골이 상접하든 말든 피 터지게 싸우고 한 번씩 용상의 주인공이 바뀔 때마다 정치인들의 시계는 피바람이 불었다.

사자와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싸우니 사슴과 토끼, 노루, 다람쥐는 숨조차 제대로 못 쉰다.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숲속의 동물들은 각기 제 역할에 충실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유독 사자와 호랑이만 특별히 하는 것도 없이 연일 사소한 트집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며 비난의 줄을 놓지 않는다. 어쨌거나 9월은 무사히 넘어가고 이제 시월에 대한 기대를 찾아보자. 먼저 시월도 공휴일이 만만찮다.

법정 기념일이지만 지난 9월 3일 국무회의를 거쳐 정식 공휴일로 다시 제정된 임시 공휴일이 국군의 날이다. 1991년 공휴일에서 제외됐다가 다시 복원된 것이다. 따라서 시월은 2일과 4일을 연차·월차로 쓰면 6일간 내리 놀 수 있다.

논다는 말이 어색하다면 쉴 수 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이렇게 넉넉하게 놀면서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을까? 생산 현장에서 야근에 철야까지 서슴지 않고 일했던 시대가 불과 30년 전이었다.

일하는 만큼 벌 수 있었고 애써 모으면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었다. 출산은 기쁨이었다. 대문에 새끼줄을 걸고 숯과 고추를 연이어 달아매며 산모는 행복했고 아이 아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집안의 보물처럼 귀하게 컸고 부모는 애지중지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꺼질세라 키웠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는 성장해 고운 인성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살면서 힘들고 고달플 때 몇 번이고 짐을 쌌다가 다시 풀고 했던 이전 세대 어머니들은 아이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어 양육권을 두고 서로 떠미는 존재로 전락했다. 모든 게 빠르게 변했다. 마당도 부뚜막도 울타리도 골목길을 가득 채웠던 아이들도 콩나물 교실도 모두 사라졌다.

예절도 도덕도 양심도 정직함도 함께 실종됐다. 친척이나 친구도 줄어들었고 이제 얼마 후면 캡슐 같은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고 배달음식에 길드는 외로운 동물로 남을지도 모른다.

땀과 눈물, 감동과 희망도 함께 사라졌다. 공익광고에서는 웅장한 음악과 멋진 포즈로 살만한 대한민국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하지만 젊은이들에게 현세대가 남겨줄 것은 천문학적 채무와 바닥날 국민연금뿐이다.

노인들이 거리에 넘치고 모든 분야에 실버라는 영어로 미화된 단순 일거리로 몰려날 것이며 겨우 입에 풀칠한 정도로 열악한 경제의 주인공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방법이 없을까.

왜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일을 하지 않고 은둔하는 것이며, 왜 아이를 낳지 않고 결혼을 기피하는지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는데 수백조 원씩 돈으로 해결된다고 믿는 정치적 논리는 행정기관에 고스란히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점점 잠드는 육체적 현장을 개선해야 한다. 당장 침대나 소파에서 일어나 무엇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환경과 소재를 제공해야 한다. 이대로 계속 TV나 스마트폰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결국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다.

자유가 선을 넘으면 방종이 되고 방종이 심해지면 타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과 같다. 사행성을 조장하는 복권과 기타 종목들에 대해 지금보다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해 도박에 대한 기대심리를 대폭 줄여야 한다.

아이의 출산과 보육과 성장이 두려우면 국가에서 안전하고 안심되게 키워주고 가르쳐야 한다. 갈수록 남자들의 권위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 이제 퇴직한 아버지는 퇴물이 되어 밥벌레로 전락하고도 남음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재활의 여지를 제공해야 한다.

한때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남자들의 어깨가 늘어지고 기가 죽어 그저 소일거리나 찾고 있다면 이 또한 정책에 반영해 길을 열어줘야 한다. 2024년 9월의 마지막 날. 이날이 다시는 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아름답고 행복했다는 기억으로 남으려면 무엇 하나라도 열정을 다해 노력해 봐야 했다.

국민의 절반이 가수고 절반이 춤을 즐길 만큼 흥이 넘치는 민족이다. 필자가 전국을 누비며 생활체육의 불을 지피는 것 또한 멈추지 말고 무엇이든지 움직여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대한민국이 발전하지 못하는 까닭은 권력층의 달콤한 공약과 표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무슨 정책이든 결과를 가늠치 못하고 만들어낸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반면 눈부시게 발전하는 경제, 문화예술, 스포츠 분야는 우리 민족의 저력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지혜와 슬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시월이 오면 선선한 가을바람과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폭염도 사라지고 이제 살만한 계절이 찾아온다. 참으로 대단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열정을 발휘한다면 지구의 종주국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