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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민중의 지팡이 창립기념일

2024-10-21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오래전 일제 강점기 일본 순사는 공포의 상징이었다. 전쟁에서 이겼다는 이유로 식민 국가를 만든 승전국의 기세를 패전국으로서는 고스란히 수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였으며 강대국들의 횡포는 온갖 명분으로 합리화됐다.

당시의 일본 순사는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고 할 만큼 기세가 등등했으며, 구성원 중에는 일본인도 있었지만 조선인도 있었다. 광복 이후 이승만 정권이 출범하면서 한때 조선인을 착취했던 선봉대장 격의 친일파가 다시 기용되는 일이 성행했으니 순사는 대한제국 경찰로 둔갑해 조선인들을 거머쥐고 흔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쩌면 때리는 일본인 보다 말리는 척하며 거드는 친일파가 더 미운 존재였다. 하지만 어쩌랴 정의가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없는 정의는 무능하다 했던가. 힘 있는 대한제국의 경찰은 힘없는 국민들 위에 군림하며 반세기를 넘겼다.

그러다 다시 힘을 얻은 것이 군사독재 시절이었는데 구속영장도 없이 어느 날 밤에 수갑을 채워가 연행하는가 하면 간첩 누명이나 기타 살인 누명을 씌우는데 폭력이 여지없이 동원되기도 했다. 실적 위주의 수사가 낳은 국민적 피해는 감히 누가 토를 달 수 없는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경찰의 위상은 친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조금만 강도 높은 조사만 벌여도 민주 경찰이 사람 팬다며 오히려 소리를 질러대니 적반하장격으로 범죄자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됐다. 장비나 정보망은 물론 경제적·시간적, 모든 면에서 범인을 쫓는 경찰 못지않게 범죄저들의 환경이 더 우세했다.

활동반경이나 운신의 폭도 경찰이 급변하는 범죄자들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반면 일반인들이 경찰을 보는 견해도 편안해 진 게 아니라 만만하게 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과거 수사 과정에 성행했던 겁박이나 무리한 조사방식은 이제 구시대적 산물이 됐다.

전화사기도 서버가 제3국에 있다 보니 홍보나 예방이 우선이고 마약사범은 갈수록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또한 마땅한 예방책이 없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경찰 내부의 기강이나 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그런 반면 경찰관들의 과중한 업무 및 실적 압박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찰관들을 자살로 내몰게 한다는 경찰청장 탄핵 청원도 등장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경찰관 자살 수는 14명인데 지난 5년간 경찰관 자살자 수를 거슬러 올라가면 2019년 20명, 2020년과 2021년, 2023년은 각 24명씩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인다.

원인으로 보면 정신 건강, 가정 문제, 경제 문제 순으로 나타났는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순직 숫자보다 더 많은 수치를 나타내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것 못지않게 자기 자신 또한 국민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찰관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과 이에 따른 책임감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는 직업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경찰관은 안정적인 고용과 정년 보장, 그리고 다양한 복지 혜택 덕분에 2026년까지 경찰관의 고용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관의 연봉은 계급과 경력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순경의 초봉은 약 2,700만 원에서 시작하며 경력이 쌓일수록 연봉이 증가해 평균적으로 약 3,715만 원을 받고 상위 25%에 속하는 경찰관의 연봉은 약 4,600만 원 정도다.

요즘 물가를 고려하면 그냥저냥 밥은 먹을 수 있는 수준인데 다행히 기본 급여 외에도 상여수당, 가계 보전수당, 특수근무수당, 초과근무수당 등이 추가되며 주거 안정 혜택, 경찰 공제회를 통한 금융 지원, 국립경찰병원 무료 이용, 자녀 학비 지원 등 여러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반면 경찰관은 위험한 근무 환경과 높은 스트레스가 있는데 걸핏하면 민원인들이 법을 거론하며 인권 운운하니 수사관의 의지대로 할 수도 없을뿐더러 너도나도 변호사를 불러 범죄사실을 옹호하는 것 또한 정의 사회 구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다행히 직급을 떠나 법대로 조사할 환경이 주어진 것도 또 하나의 변화다. 사법기관은 행정기관과는 달리 공무원 노조가 이제야 기지개를 켜고 있다. 행정기관은 이미 주무관이라 하더라도 상급자의 상명하복이 먹히지 않는 시대가 됐다. 자칫 갑질하다가는 감사기관에 보고되어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은 여전히 사법기관이라는 이유로 위에서 하라면 해야 하는 분위기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지난 7월 18일 경찰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것을 뼈대로 한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경찰 창설 78년 만에 처음으로 경찰공무원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인데 개정안에는 노조 가입 범위에 경찰공무원이 추가됐다. 교정, 수사 등 공공의 안정과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노조 가입이 제한된다는 문구가 삭제됐다.

다만 공무원노조법 11조에 따라 파업 등 쟁의행위는 금지된다. 경찰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함으로써 실질적 권익 향상은 물론, 스스로 민주적 통제 능력을 길러 인권 침해나 수사권 남용 사례를 막고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 자긍심을 고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입법 취지다.

공무원은 노동 삼권 중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하고 있어 행정 공무원 대비 굳이 경찰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불허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 입법의 취지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등은 경찰관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1960년대부터 경찰노조가 인정돼 단체교섭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바 있어 대한민국 경찰이 노조 설립이 글로벌 흐름에 부합한다는 게 다수 경찰관의 입장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지난 2022년 10월 전국경찰직장인협의회 출범이후 진일보한 상황이 되며 경찰 고위공무원 인사 비리, 조직개편 문제, 처우 개선 등 불합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