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과 화합은 그림의 떡
2007-06-12 박호양
법(法)이 공동체의 질서라면 정의의 과제는 공공(公共)의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旣存)의 여러 관계가 공동복지의 실현을 보장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는 의지를 가지고 사회질서 확립을 달성하는데 고심하면서 이른바 “정의사회구현”(正義社會具現)이라는 지표를 내 걸었다.
이 같은 원칙(原則), 질서(秩序), 규범(規範), 기강(紀綱)이 해이(解弛)되고있는 곳에는 “공정과 정직”의 존립을 기대할 수도 없고 정의사회를 구현할 수도 없다. 그 때문에 정직하고 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근간(根幹)은 원칙과 질서를 철저히 지키고 존중하며, 규범을 준수하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기강을 바로잡는데 너. 나 할 것 없이 솔선하면서 수범을 보이는데 있다 할 것이다.
이 같은 운동은 인간의 심성을 순화시키면서 비틀어져 있는 양심을 바르게 하도록 지침을 주는 교훈이 되는 가치가 부여되기도 한다.
흐지부지 막을 내린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의의 근간인 “공정과 정직”이 무너져 내린 사회구조는 기강은 해이되고 질서가 괴리되면서 상하분별을 가리지 못하고 혼란 속에서 잡탕을 이루게 하고 있다.
결속하고 단합하여야 한다. 규정에 순응하여야 함에도 유리(遊離)되고 방종(放縱)하고 있다, 포용하는 아량은 없고 사실을 근거하고 있음에도 음해(陰害)와 날조(捏造)가 판을 치고 있다, 일보 후퇴하고 양보하는 곳에서 화목이 도모되기도 한다.
공손 타협 융합하지 못한 탓
그럼에도 도전(挑戰)과 반항(反抗)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욕을 버리고 포용하는 도량이다. 그러나 이기(利己)와 배타(排他)가 일색을 이루고 있다, 겸허하고 공손하면서 타협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조율하고 융합해야한다. 하지만 오만(傲慢)과 독선(獨善)을 고집하면서 교만하고 있는 것이다 상부상조 공동체의식이다.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양상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 옳은 일에 대하여는 찬사를 보내면서 지지해야 한다. 다툼이 없는 우호관계을 돈독(敦篤)히 하여야 함에도 조건 없는 반대(反對)와 투쟁(鬪爭)이 연속되고 있다. 그동안 친노(親盧)와 반노(反盧)의 대립이다. 갈등의 골은 깊어가면서 전각(全角)이 반각(半角)이 되어 버렸다. 같은 정당이요 조직체에 있으면서 주장이나 사상이 일치하지를 못하고 각기 달리해 왔다. 단합이 유리되면서 파멸되어 버린 까닭은 이분자(異分子)들의 집합체 였기 때문이 었다. 진보세력은 늙어서 힘도 없는 보수를 향하여 그렇게도 가슴에 사무친 애절한 한(恨)이 많았는지는 몰라도 난도(亂刀)질을 서슴지 안 했다.
국토가 반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 처럼 전반적으로 개인과 개인,
지역과 지역간은 물론 각 분야는 전각이 반각으로 갈라져 한 덩어리가 양분화되어 가면서 서로 등을 들리고 반목과 이질이 조장되어 왔다.
이 같은 곳에 양심성 정직성이 보장될 수는 없다. 그리하여 미덕을 구원할 수 없는 곳 하나도 없이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할 아름답고 소박한 소양미는 사라져 버렸다,
따라서 긍정할 것은 마땅히 시인(是認)하고 순종해야 마땅함에도 끝까지 당치도 않는 논리를 구사하면서 고집을 앞세워 자기의 주장만이 원칙이요, 정의롭다고 강변하면서 관철하려는 고집은 지지 (支持)와 공명(共鳴)을 받을 수는 없다.
공동체의 가치관은 전도되고 말았다. 모두가 하나가 되면서 건전해 왔던 사회기풍은 흐려져가고 있으면서 빈부격차의 분야뿐만 아니다.
지지파와 반대파의 대립. 온건파와 강경파와의 격돌. 상급자와 하급자간의 갈등 한 덩어리가 둘로 이분화(二分化)가되어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논쟁에서 양극화 현상이 극치 달하고도 있다.
기존이나 현재나 질서의 내부에서는 우선 공공의 복지를 위하여 규범이나 법칙이 존중되지 않으면 이것을 일반적으로 법률적, 사회적 정의라고 볼 수는 없다.
굴절되어 있고 황폐화(荒廢化)되고 있는 현시대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책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