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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의 기자수첩]삶의 수단이라는 항변

2015-01-26     윤성민기자

새벽의 미명이 저녁의 어둠을 채 걷어내기도 전, 작은 입김으로 언 손을 녹이며 양식장으로 향하던 어민은 폐사한 고기떼를 보며 쓰러지고, 목숨과도 같은 비닐하우스로 나가던 한 농민은 얼어 죽어있는 시금치를 부여잡고 오열한다.

최근 구리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농어촌을 중심으로 한 전선 절도 사건이 또다시 급증하고 있다.

전선에 포함된 구리를 노린 것이다.

전선이 훼손되면 양식장 물고기에게 공급할 산소가 끊겨 고기들이 폐사하게 되고, 냉·난방장치가 고장나버린 비닐하우스 안에선 농작물들이 말라간다.

전선이 공공기물이라곤 하지만, 그것이 훼손되었을 때 돌아오는 피해는 모두 농민의 몫이 되고 있다.

전선절도는 1920년대 초반에도 ‘잦다’고 평가되었을 만큼, 우리나라에 전기와 전화선이 보편화되며 함께 늘어왔다.

한국 전기공사와 경찰은 5,000만원 상당의 포상금을 내걸기도 하고, 구리전선을 알루미늄 전선으로 교체하기도 해보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전선 절도는 근절되지 않았다.
근절되기는커녕 100여 년 간 변함없는 모습으로 공생한 끝에 현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범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생계를 이유로 내세운다.

자신의 생계를 위해 타인의 생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절도행각을 벌였다는 것이다.
농어촌을 대상으로 한 전선절도는 단순히 공공기물 파손이나 특수절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범죄는 제2, 제3의 피해를 야기한다. 바로 농어민의 직접적 생계의 위협이다.

전선절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농민들은 이렇다 할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시금치와 고기떼를 부여잡고 오열할 뿐이다.

현재의 법안은 전선절도범에게 너무나 관대한 모습이다.

재판부는 그들의 생계를 참작하여 최소한의 실형이나 벌금형에 처할 뿐이다.

작년 8월, 울산지법에서는 억대 전선을 절취한 범인에게 징역6월에 집행유예 2년, 공범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참으로 솜방망이 처벌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생계를 위해 타인의 생계를 위협하는 전선절도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범죄이다.
문제는 관련법령의 부재이다. 엄중한 법령을 제정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자신이 먹고살기 위한 범죄였다 하더라도 국가의 기물을 훼손하고 타인의 생계를 위협하는 행위는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제도적 문제점을 올바로 직시해야 한다. 관련 법령을 제정하여 억울한 피해를 입은 농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하고, 엄중한 처벌로 재발의지를 꺾어 우리의 미래인 농민을 보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