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창립 40주년인 1988년부터 매년 5월 31일을 세계 금연의 날로 정한 기념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아직도 무식하게 담배를 피우느냐는 핀잔이 별로 어색하지 않은 시대에 돌입했다.
불과 수 십년 전만 해도 버스는 물론 기차 안에서도 흡연이 당연시 되는 시절이 있었다. 의자 뒤에 부착된 재떨이는 필수적인 시설물이었고 복잡한 버스 안에서 담배연기로 등에 업은 아기가 울어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때였다.
폭력영화에서 담배물고 폼 잡는 자세는 많은 관객들에게 멋진 모습으로 비춰지며 흉내 내기에 몰입했던 청소년들도 많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안방의 재떨이는 배란다는 물론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피울 수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버스 정류장근처는 물론 공원, 대형건물, 등 곳곳에 금연스티커가 붙으면서 흡연자들의 설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한산도, 은하수가 300원하던 시절, 태양, 솔, 거북선이 500원 하던 시절, 담배인심은 후했다. 몇 년 전까지 2,500원하던 담배 값은 국민건강을 핑계로 4,500원으로 대폭 인상되었지만 서민들의 주머니만 가벼워 질뿐 흡연율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감히 누가 담배 값 다시 내리라고 주장할 것인가. 금연정책은 담배값 인상보다는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는 스스로의 결정의 비중이 더 크다. 금연패치나 관할 보건소의 정책도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주변의 시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너도 나도 다 끊는 담배지만 애연가들의 모질지 못한 정과 습관 때문인지 아직도 2018년 기준 34억 7천 만갑, 약 700억 개비가 팔렸다. 돈으로 환산하면 1개비당 250원으로 치더라도 17조원에 이른다. 물론 피우고난 700억 개의 꽁초도 환경오염의 주범이겠지만 인체에 흡입된 후 치러야할 의료비는 천문학적 숫자다.
이러한 통계나 과거의 넉넉한 담배인심을 논하지 않더라도 흡연자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구수한 담배연기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안개처럼 뽀얀 담배연기가 소설가나 특히 신문기자의 책상 재떨이가 수북해질 때 마치 번민의 잔재처럼 자리매김한다.
흥분하거나 식사 후, 화장실에서 인체의 변화가 일어날 때 흡연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몇 달은 물론 몇 년을 끊었다가도 다시 피우게 되는 담배, 혹자는 끊으려는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피우고 말겠다는 자기합리화도 생겨난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격언을 보더라도 백해무익한 담배가 어찌 지금도 막대한 애연가들의 사랑을 받을까. 한 개피 담배도 나누어 피운다던 군가 가사가 이젠 어색하다. 젊은이들의 병영생활에서도 금연열풍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수십년 피우던 애연가들이 점차 건강에 이상신호를 느끼며 하나둘 금연을 감행하는 시기,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건 정작 시작하지 말았어야할 청소년들이 문제다. 흡연에 대한 만족감이나 니코틴 중독에 대해 차별을 두자는 건 아니다.
누구나 피울 자유가 있고 흡연으로 인한 기호를 간섭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직 폐부의 미성숙으로 다 자라지 못한 신체 장기들이 일찍부터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일까. 젊은 여성들의 흡연이 증가하면서 기형아 출산이 거론되면 아이 안 낳으면 될 것 아니냐는 반문이 돌아온다.
인류가 수 천 년 전부터 즐겨오던 담배, 한국은 광복 이후 일반인들에게 판매되면서 흡연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아직도 금연자 대비 신규흡연자의 증가로 꾸준히 편의점 매대의 뒷 배경이 되고 있는 담배,
필자 또한 자유롭지 못한 흡연자로써 오늘을 기점으로 끊어볼까 하지만, 그렇게까지 억척을 부려야하나 하는 생각이다. 글을 쓰고 나면 더 생각나는 담배가 적이자 동지가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