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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어부의 노래
[덕암칼럼] 어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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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물결 춤추고 갈매기 떼 넘나들던 곳 내 고향집 오막살이가 황혼 빛에 물들어간다.” 1966년 아리랑 싱어즈 홍신윤 작사, 작곡 가수 남석훈이 발표한 ‘황혼 빛 오막살이’가 원곡으로 1980년 이형탁 작사 작곡 박양숙 가수가 불러 히트 친 ‘어부의 노래’ 첫 가사다.

강화도 어부의 딸이었던 심성 착한 박양숙 가수는 이 노래 단 한 곡만 부른 효녀로 가사와 음성에 진솔함이 공감되는 곡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모았던 이 곡은 필자 또한 즐겨 부르던 애창곡 중 하나였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의 애환이 녹아내린 노래를 듣노라면 한 번쯤은 동화속의 풍경이 그려지지만 사실 어부들의 생활을 보면 여간 힘든 삶이 아니다. 이미 바다에 발 들여놓은 삶은 마땅히 다른 일을 하기에도 그렇고 익숙한 어부의 삶에 쉽게 바다를 떠날 줄 모른다.

그렇게 바다와의 삶은 과거 5천 년 전이나 5백 년, 5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변하지 않는 파도와 어종을 알 수 없이 많은 바다생물들과 동고동락하며 지내왔다. 다만 달라진 것은 어종을 잡는 방법과 장비들이 더 발달 되었다는 사실일 뿐 바다는 항상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때론 화가 나서 배를 뒤집기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한 평화의 분위기를 만들지만 언제 다시 돌변할지 알 수 없는 것이 바다다.

한국만 해도 동해는 푸른 파도와 멋진 백사장이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주고 섬이 많은 남해의 다도해는 국립해상공원으로 정해질 만큼 사계절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서해에는 바닷속을 다 드러내 보이는 갯벌에 수시로 어패류나 해산물 등 다양한 선물을 가져다준다.

물론 물고기는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강, 호수, 댐에도 있고 어부들의 생산물과 양식으로 얻은 고기들을 이른 새벽 도매상인들의 요란한 경매시장을 거쳐 수산시장에 내다 파는 소매상도 있다.

이제는 도심 한가운데 수족관만 있으면 언제든 싱싱한 활어를 먹을 수 있는 횟집은 물론 노량진수산시장과 항구가 있는 부산, 인천 등 어디서든 바다는 인간에게 맛있는 생선을 제공한다.

우리는 당연한 듯 돈만 내면 소비자의 권한으로 바다의 선물을 먹을 수 있지만 당초에 어부의 수고가 없었다면 한 마리의 생선도 잡을 수 없는 것이 일반인들 입장이다. 그러기에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돈만 낸다고 당연한 게 아니라 거친 파도와 싸우며 때론 목숨까지 위험한 삶의 현장에서 수고한 어부들의 노력을 고맙게 여겨야 할 일이다.

독자들도 아시겠지만 바다는 해녀들에게도 원양어선 선원들과 가족들에게도 낙지와 개불, 조개를 캐는 갯벌의 어부에게도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리고 땡볕과 비바람 속에 풍성한 작물을 추수하듯 어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마트나 수산시장만 가면 언제든 원하는 물고기를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수협이나 한국수산자원공단도 흑자운영을 해야겠지만 어민들도 노력한 만큼 어느 정도 풍족한 경제적 윤택함을 누려야 맞는 것이다. 고된 노동과 위험을 감수하고 얻은 결실이 도매시장과 유통, 상인들의 이윤으로 돌아가는 현 시스템이 어느 정도 생산자 소득 중심의 형태로 방향을 바꾸는 정책도 필요하다.

100만 수산인을 포함해 생선 해체, 제조, 유통까지 모두 바다가 주는 은혜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이제는 인간 스스로 수산업을 육성시켜 양식도 상당히 발달한 편이다. 이미 2021년부터 수산종자산업진흥센터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의 종자를 생산하고 있다.

이 같은 연구기관들도 포함한다면 수산인에 포함되는 인구는 더 상당하다 할 것이다. 오늘은 2011년 법정기념일로 정해진 ‘제13회 수산인의 날’이다. 2023년 경남 통영에서 개최된 수산인의 날에는 윤석열 대통령까지 참석해 수산인들의 노고를 치하한 바 있다.

문제는 갈수록 선원 구하기도 힘들고 치솟는 유류 비용에 일정치 않은 생선값이다. 이제 대부분의 항구에서 한국인 선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가 살고 있는 작은 섬마을에도 작은 항구가 있는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배의 선장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외국인 근로자를 구해도 이제 한국인 못지않은 인건비를 줘야 하며 여차하면 더 준다는 곳으로 한마디 예고도 없이 가버린다는 것이다. 파도 보다 사람 구하기가 더 어렵다는 수산인들의 푸념에 정녕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일까.

필자는 지하 수 천 미터 아래 석탄을 캐는 광부들의 삶을 지켜도 보았고 실제로 갱도 안에 들어가 수 백 번 땀도 흘려 보았다. 전국의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한밑천 잡고 다시 나가겠다던 강원도 탄광지대의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수십 년 눌러앉은 삶을 살았다.

지금은 에너지 변천으로 폐광촌이 되어 서서히 인구소멸의 길로 가고 있지만 바다는 다르다.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인간에도 도움을 주고 있음에도 당연한 듯 받기만 하고 고마운줄 모른다.

체계적인 인재양성, 어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각종 정책, 외국인 선원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젊은이들이 어업에 종사해 전문성을 키운다면, 그리고 그에 대한 충분한 예산지원과 첨단 기술까지 익히게 한다면 한국의 바다는 한국인이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대책 없이 고령의 늙은 선장과 국적도 파악하기 어려운 외국인 어부들에게  맡긴다면 수 십 년도 못가 바다 운영권을 모두 빼앗기고 생선 가격이 폭등해도 아무소리 못 하고 구입해 야하는 시대가 찾아온다.

안 그래도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가 어쩌고 하며 바다를 외면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태평양 해류를 타고 다시 대한민국 해역으로 돌아오는 그때 또 가만있던 정치인들이 핵 오염수가 어쩌고 하며 겁줄 것인가.

까마귀 고기 먹은 것처럼 생선을 기피하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런 감각 없이 잘 섭취하고 있다. 수산업에 대한 현실적인 정책과 실행과 예산편성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