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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불효자는 웁니다 태백시장 이상호
[덕암칼럼] 불효자는 웁니다 태백시장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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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오늘 글은 필자 개인의 사적인 감정을 적시한 내용으로 글의 소재인 당사자의 양해나 등장인물들에 대한 편견 없이 객관적인 측면에서 작성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 대해 정치적 공세나 기타 선거법 관련한 이의가 제기되지 않기를 바라며 작고하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

1989년 당시 강원도 태백시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강원도 태백산맥 하부와 경북 상부 지역에 걸쳐 형성되었던 탄맥을 개발하여 운영되었던 모든 광산들이 문을 닫던 시절이었다. 석탄을 채굴하는 과정에 많은 인명피해도 있었지만 덕분에 산림은 울창하게 보존되었고 국민들의 안방은 따스했다.

하지만 에너지 산업의 변천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를 타고 있었고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합리화라는 명칭이지만 실제 아무 대책 없는 정부의 강제 폐광으로 인해 전국에서 모여 살던 강원도 태백시는 험준하고 깊은 산골짜기에 인구 12만 명에 가까운 한국판 마추피추였다.

필자 또한 강제 이주나 마찬가지였던 폐광의 강풍에 경기도 안산으로 정착했지만 합리화반대시위를 주동했다가 충분한 대가(?)를 치르고 고향이나 마찬가지였던 태백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약 35년 동안 태백시의 부활을 위해 다양한 활동과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미 지방의 소멸도시가운데 대표적인 지역이 됐고 최근 당선된 이상호 태백시장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어보았지만 이 또한 필자 개인의 바람이지 시장이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었다.

지난 2022년 6월 1일 49세 나이로 11,847표를 득표, 54.04%라는 박빙의 승부로 당선된 국민의힘 출신 이상호 시장은 강원도의원을 역임한 것이 전부인 정치초년생이었다. 선거 당시 상대 후보로부터 기초수급 대상자에 대한 논란도 있었으나 이상호 후보는 해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며 일말의 답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은 순풍이었다. 당시 강원도의회는 국민의힘이 전체 의석수 87.8%인 43석을 싹쓸이 한 반면 민주당은 비례를 포함해도 6석밖에 되지 않았고 시장 군수 또한 국민의힘이 홍천, 삼척, 태백시장을 배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상호 후보도 여기에 포함되면서 마치 기적 같은 출세길에 올랐다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가시밭길의 시작이었다.

그는 태백시 경제 규모를 키워 예산 2조 시대 열겠다고 공약했고 임기 내 매년 태백시 예산 5000억 원을 편성하겠다고 큰소리쳤다. 당선 이후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에 대한 주변의 저항은 단순한 반대 그 이상이었다.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들이 상대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과 이를 모두 끌어안아도 인구 4만도 안 되는 태백시의 미래는 이미 꺼져가는 모닥불 형국이었다.

하나 둘씩 이삿짐을 싸는 탄광촌의 수장으로서 달리 방안이 없었고 외부에서 보기에도 절절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였지만 성과는 인구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선 6개월만인 2022년 12월 3일 모친 고 김명숙 씨가 7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고생만 많았다는 주변의 전언을 듣노라면 자식의 출세를 본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부고를 통보하는 과정에 비서실 직원에게 카톡 명단 중에서 꼭 보내야 할 분만 보내라 지시했고 친분의 강약을 구분하기 어려웠던 직원이 무작위로 부고를 전송하면서 이른 바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에 직면했다.

사태는 일파만파 불거졌고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했다.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언론들도 받아쓰기에 바빴다. 급기야 지역 사회단체 3곳이 청탁금지법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춘천지검 영월지청에 이 시장을 고발했고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공무원 행동강령'위반으로 단정했다.

심지어 경조사 통지 대상자 선정, 청첩장 주소 작성, 부고장·청첩장 발송 등을 비서에게 지시한 점도 사적 노무를 요구한 것으로 지적됐다. 상중이라 경황이 없고 강제성이 아니라는 설명도 변명이 됐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아 달리 부고할 방법이 없었다는 정황도 공직자의 신분이 참작되지 않았다.

결국 주민소환제로 불거져 서명운동이 시작되었으나 해프닝으로 끝났다. 문제는 모친상이 부조금에 대한 논란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병중이던 부친에게는 집안의 모든 가족들이 금기로 정했다. 양친 부모의 금슬도 좋았지만 부친의 병환이 만성이라 더욱 조심스러운 점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방송에 보도되었던 모친의 작고소식은 텔레비전을 시청 중이던 부친의 눈에 띄었고 침묵은 웅변보다 못한 일이 되고 말았다. 충격을 받은 부친의 병환은  2024년 들어 더욱 악화되었고 2024년 4월 16일 오후 3시 태백시청을 방문하여 잠시 인사를 나눈 자리에서 모든 정황을 청취할 수 있었다.

상태가 위중하여 수일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과 이번 부친상에는 아무 부고도 띄우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확인했다. 하지만 인사를 나눈지 몇시간 지나지 않은 17일 오전 9시 이 시장의 부친 고 이순우씨는 향년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부인 허유저씨와 동생 이상엽씨가 유족으로 모친의 장례를 치렀던 태백병원에서 유족으로 섰을 이상호 태백시장에게 4월 18일 아침 공개적으로 위로의 뜻을 전한다. 같은 부고라도 공직자가 하면 죄가 되는 현실과 부친상에 부고도 하지 못하는 불효자를 보면서 편견의 극치를 공감하게 된다.

죽어가는 탄광촌 태백, 가만둬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지방소멸의 대표 지자체 태백, 필자는 올해 초 태백을 방문하여 황소처럼 생긴 이상호 시장을 미쳤다고 공개적으로 칭했다. 현 시점에 미치지 않고는 결코 회생될 수 없는 탄광촌을 관광 촌으로 만드는 일에 모든 시민들이 같이 미쳐줄 것을 당부했다.

어떤 일이든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곱게 보면 안 고운 것이 없듯 밉게 보면 안 미운 것이 없다. 개인의 애경사까지 정쟁의 소재로 삼는 것은 훗날 단체장을 퇴임하고도 악연을 남을 소지가 크다. 사람이 살면서 사소한 다툼이야 있겠지만 사무칠 만큼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

부친의 작고에 아무 부고도 못하는 못난 이상호 태백시장의 부고를 한마디 논의도 없이 필자가 대행해 본다. 덧붙인다면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다. 하늘이 열린 날 단군성전에서 함께 국태민안 태평성대의 기도를 올리던 정성이 현실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