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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너 늙어봤냐, 나 젊어 봤다
[덕암칼럼] 너 늙어봤냐, 나 젊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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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오늘 칼럼의 제목은 2015년 발표된 서유석 작사, 작곡, 노래의 노랫말 중 첫대목이다. 나이 구십에도 건강한 노인이 지난 30년간의 직장 생활에 젊음을 바친 이후 나름 연륜과 경륜을 경쾌한 노래로 표현한 곡인데 지금도 노래방에서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다.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짧은 삶의 일정을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새출발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노인의 삶이 언제부턴가 꼰대라는 이름으로 폄하되면서 이제 노인이 어르신이라는 우대 정신은 아예 사라졌다.

그나마 1년에 하루 5월 8일 ‘어버이날’이면 평소 안 하던 요란을 떤다. 지방자치단체장과 기타 공공기관에서는 어르신을 모신다며 인근 경로당에서 자장면을 나눠주는가 하면 기자들을 불러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정치인들은 노인복지에 대해 마치 새로운 청사진을 발견한 것처럼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정책을 발표한다. 이날 하루만 효도를 주장하며 이날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민생을 외치는 복지의 선구자로 돌변한다.

작년 7월 30일 문재인 정부에서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 보호처장을 지내고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전 혁신위원장이 한마디 말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둘째 아들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우리 미래가 훨씬 긴데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똑같이 표결을 하냐는 것이냐”며 합리적이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2004년 3월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 발언했던 “60대,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집에서 쉬셔도 되고”라는 발언에 이어 정치권의 대표적인 실언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후 김 전 위원장은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을 찾아 사과했지만 당사자가 보는 앞에서 당사자의 사진에 뺨을 맞는 퍼포먼스를 겪어야 했다. 노인 폄하 발언은 국민의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민경우 전 비상대책위원이 말 한마디로 임명 하루 만에 위원직을 물러난 사건이다. 민 전 위원은 지금 최대의 비극은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 산다는 것이며 빨리빨리 돌아가셔야 한다는 말로 세간의 비난을 샀다.

정치권에서 이러니 폄하 발언의 영향은 사회전반에 걸쳐 노인들을 함부로 대하는 미풍양속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 노인들의 인구분포도는 노인이라 지칭되는 연령대가 선거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난 22대 총선 비례대표 선거 당시 노인복지당이 0.05%득표로 그친 점을 고려할 때 노인복지당의 전신인 한국복지당이 21대 총선에서 거둔 0.06%보다 못한 성적이 국민들의 지지도였다.

단적인 수치가 아니라 국민들이 바라보는 노인들의 위상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그만큼 평가 절하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이 직접 당선을 호소하며 애를 썼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노인복지당은 OECD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서 탈피하고 각종 복지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노인에 대한 사회적 견해는 15,178표라는 성적으로 그리 호의적이 아니었다.

이는 전체 노인인구 1,000만 명을 고려할 때 그나마 가입한 300만 노인회원들조차 등을 돌렸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10년 후 노인인구 1,500만 명에 도달하면 빈곤, 질병, 고독, 무위라는 4대 고에 대한 복지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점도 예산편성의 증가 요인이다.

2024년 노인 예산은 25조 6,330억 원으로 2014년 6조원보다 4배나 늘었지만 노인 인구는 매년 50만 명씩 늘어난다. 노인 예산은 이제 정점을 찍었다. 현재 상태라면 노인에 대한 복지 예산의 확보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정치권이 바라보는 노인들의 현주소도 열악하겠지만 무엇보다 비경제 인구라는 점과 사회적 윤리의식 붕괴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적으로도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대한노인회 전국 시도연합회장 협의회는 지난 5월 4일 김호일 회장의 가짜 박사학위 취득 사건을 비롯해 노인지원재단 기금 부정 사용 의혹, 22대 총선 선거법 위반 등 각종 논란을 야기한 점에 대해 공개적인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요구에 사건의 사실여부와 김 회장의 대처 방안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제 효도라는 말 자체가 어색해진 시대가 됐다. 가수 서유석의 노랫말처럼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다는 말이 암시하는 노인들의 미래는 점차 열악해져만 가는 현실이 더욱 척박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금 같은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젊은 차세대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이며 우리 민족의 실종된 자존감은 어디서 회복할 것인가. 어쩌다 이 나라가 노인보다 개를 더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으며 어쩌다 노인의 연륜과 경륜이 휴지 조각보다 못한 위치로 전락했을까.

장인정신은 어디 가고 어른·아이가 없이 돈과 힘이 전부이며 과거에 대한 말만 꺼내도 라떼로 치부해 입도 뻥긋 못하는 현실에 직면했을까. 이러다 현재의 젊은이들이 노인이 되면 그때는 어떤 사회가 될까.

어쩌다 노인세대가 기껏해야 몇만 원짜리 공공근로를 마련해 취업률이 높아졌다며 너스레를 떠는 정책에 그러려니 하는 국민이 되어 학교 앞에서 깃발 들고 잔디 정돈과 담배꽁초 줍는 일이 소일거리가 되는 비생산적 계층이 되었을까.

필자의 생각은 노인들의 경험치는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삶의 노하우가 담겨있고 그 경륜은 금전으로 환산될 수 없는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연륜은 나이만 먹는다고 자연스레 쌓이는 게 아니라 매년 춘하추동의 변화를 겪어낸 나무의 나이테와 같다.

노인들이 기운이 없거나 몰라서 가만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 젊은이들의 언행이 다 느껴지고 그러려니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 했던가. 열 지갑조차 없다면 그런 노인이 지천에 넘친다면 과연 미래의 노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인가.

어버이날 다시 한번 짚어보는 대한민국 노인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