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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덕암칼럼]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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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이미 늦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뜨거운 맛을 보고 있음에도 여전히 다람쥐 쳇바퀴 돌듯 실패한 정책을 반복하며 말만 무성했지 실속 없고 실효성 없는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

이미 전 국민이 다 공감하고 있는 저출산 문제를 정책입안자들과 담당 공무원만 모르고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오늘은 수학이 아니라 산수보다 더 정확하고 뻔한 공식을 풀어보자.

저출산의 출발은 임신을 하지 않기 때문이고 임신은 성령으로 잉태하지 않는 한 여자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남성의 씨가 있어야 하며 남녀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저출산은 혼인을 전제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인데 결혼을 왜 안 하는지부터 찾아내야 순서가 맞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현실적으로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씨도 뿌리지 않은 밭에 가서 고가의 비료도 뿌리고 추수에 필요한 농기구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며 난리 블루스를 추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나 했다가도 이혼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아이는 처음부터 안 낳거나 낳았어도 서로 떠맡기는 짐이 됐다. 물론 과거에는 다 양보해도 아이만큼은 절대 안 놓으려는 모정이 강했다.

살면서 아이 키우는 게 낙이고 힘이었는데 지금은 짐이다. 만약 막대한 재산이 있었어도 그랬을까. 당연히 보육과 교육 그리고 노후까지 함께 살 수 있으니 그럴 일이 없었을 것이기에 결국 돈 문제다.

당장에 혼자서도 살기 힘든데 아이까지 맡아서는 직장도 사업도 꿈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부모가 맺어주면 얼굴도 모르고 부부가 되어 한 평생 7남매 키워가던 시절이 있었다. 부뚜막이 주방의 전부였던 그 시절 우리네 어머니 세대는 산부인과 없어도 산후조리원 없어도 종이기저귀나 분유 없어도 잘 키우고 대학까지 농사지어 뒷바라지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업고 안고 손잡고 큰 아이는 뒤따라 걸어 다니던 그 시절. 그 아이들이 지금 서울과 수도권으로 상경해 넥타이 매고 또 어떤 아이는 골프장과 해외여행을 다니며 머리에 선글라스를 얹고 손에는 캐리어를 끌고 다닌다.

한 동네 한 집이 이혼하면 온 동네 우물 방송의 뉴스가 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집 건너 이혼이고 경제적으로 망가진 가정의 아이들은 누구 하나 보살핌 없이 여아는 늑대들의 먹잇감이 되고 남아는 게임에 빠져 인격 장애를 겪는 게 현실이다.

아이를 낳으라고 돈다발로 독촉할 게 아니라 있는 아이라도 제대로 키워야 한다. 만약 저출산 정책에 실패한 비용을 입법기관과 정책 시행 공무원에게 일정 비율 부담시킨다면 그래도 지금처럼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까.

인구감소에 대한 적신호는 이미 켜진 것임에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이 나라 지도자와 정치권의 안일한 대처가 지금의 난국을 자처한 것이다. 아이가 콩나물시루에 물 붓듯 물만 붓는다고 하루아침에 자랄까.

농사처럼 봄에 씨 뿌린다고 가을에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20년 전에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그 세대가 자라서 다음 세대를 기약할 수 있지 지금처럼 당장 임박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사실상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자살률 1위, 이혼율 1위, 출산율 최하위, 청소년 흡연율 1위, 대체 무엇 하나 인구증가를 기대할 수 있는 여건을 찾아볼 수 없다. 뿐인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는 대 놓고 무출산 운동을 벌여 대를 끊어 놓겠다면서 일부 여성단체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한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세계 최저의 출산율로 100년도 못가 저절로 사라질 나라다. 아이를 안 낳으려면 당사자만 임신하지 않으면 될 일이지 멀쩡한 가임여성에게까지 무출산을 부추기니 이야말로 반국가적 언행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을 무출산으로 충동질시키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질 못한다. 어쩌다 나라 꼴이 이 지경이 됐을까.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현시대의 안일하고 이기적인 분위기가 점차 자리 잡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고 그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을 세우고 정책도 마련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모두가 함구하면 침몰해 가는 대한민국호는 이대로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된다.

3D 직종에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1차 산업에 계절 근로자 고용제도를 마련하면서 왜 저출산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돌파구가 되는 국제결혼에는 인종차별, 국적에 대한 편견으로 소홀히 하는 것일까.

필자가 베트남 현지의 구석까지 찾아다니며 한국과의 인연, 풍습, 미풍양속, 효도에 대한 개념, 남편에 대한 존중, 검소하고 근면한 생활 태도를 취재한 결과 상호 간 기대치가 맞물리는 점을 발견했다.

대한민국 미혼과 독신 남들이 결혼하지 못한 통계는 약 200만 명. 많은 남성들은 한국 여성과의 결혼을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 여성들의 결혼 기피 현상이다. 반면 베트남에서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틈틈이 한국어를 배우는 여성들의 숫자는 몇 배나 많은 실정이다.

특히 이들이 한국에 정착하면 인구 증가는 물론 2세들의 다산으로 다음 세대를 이어갈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한국 베트남 간의 국제결혼 문제는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민간업체들에 의해 추진되어 온 바 있다.

지난 3년간의 팬데믹 현상으로 주춤했지만 이제는 더 늦출 이유가 없다. 인구 1억 명에 평균 연령이 젊은 베트남은 풍부한 자원, 저렴한 인건비로 동남아의 잠자는 용으로 무궁한 가능성을 가진 나라다.

한국 전쟁이 1950년에서 1953년까지 3년이었다면 베트남 전쟁은 1955년부터 1975년까지 20년간 이어진 점만 다르다. 향후 10년, 이 시기에 베트남 국제결혼을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면 10년 후에는 이마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때는 한국 못지않게 베트남도 잘사는 나라가 될 것이며 현재 경제성장 그래프의 상승곡선이 그런 미래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