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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같은 사고 다른 보상
[덕암칼럼] 같은 사고 다른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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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든 인간의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

그 어떤 국책사업이나 공공단체의 행사라 하더라도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모두 중단하거나 방향을 달리하여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할 것일진대 29년 전 6월 29일은 서울도심 한복판의 백화점이 붕괴되어 대형 참사를 낸 날이다.

이후에도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사고 등 김영삼 정부 당시 많은 사고가 있었지만 원인분석이 미진했고 진상규명이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으며 대통령 때문이라는 억측은 입에도 꺼내지 못했다.

지금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방이 탄핵의 원인이 되거나 헌법재판부에서 대통령을 파면하는 선고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고 채상병의 죽음은 모두 정치권에서 앞장서고 또 다른 정권을 표적으로 하는 대립속에서 원인분석과 보상여부가 거론됐다.

참사와 그에 따른 보상, 같은 생명이라도 나이, 성별, 사고과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에 대해 감히 누구하나 입을 벌리지 못한다. 여차하면 사이버 공격의 대상이 되어 처참한 대가를 치르는가 하면 옳고 그름을 떠나 몰면 몰리는 게 현실이다.

진실은 중요하지도 않고 거센 폭풍우에 떠 있는 한 척의 조각배일 뿐이다. 29년 전 오후 5시 57분, 평소처럼 쇼핑을 즐기던 이들은 찰나의 순간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한국뿐만 아니라 외신에서도 비중 있게 다룰 만큼 큰 사고였다.

정확히 인재였고 묻어져서도 잊어져서도 안 될 사고였지만 유야무야 마땅히 책임질 사람도 없이 시간이 약이 됐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 사고의 사망자는 502명, 937명 부상, 6명이 실종된 사고였다.

처음부터 예견된 사고였고 옥상의 에어컨 냉각탑 이동과정에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붕괴조짐을 알 수 있었던 일이었다. 무게만 해도 36톤, 냉각수까지 채우면 무려 87톤이었다. 에어컨 냉각탑의 무게는 옥상이 견뎌낼 수 있는 하중의 4배가 넘었다.

냉각탑을 옮기는 과정에서 삼풍백화점은 냉각탑 무게를 고려해 크레인으로 옮겨야 하지만 그 장비임대비용을 줄이기 위해 냉각탑 자체에 달린 롤러를 이용해 연약한 옥상에 설치된 냉각탑을 질질 끌고 옮긴 것이다.

붕괴 사고가 발생하기 두 달 전인 1995년 4월에는 백화점 5층 북관 식당가 천장에 균열이 생겼고 5월에는 5층 바닥이 내려앉기 시작했지만 백화점은 영업을 계속했다.

계속되는 붕괴 조짐에 긴급대책회의는 심지어 붕괴 사고 발생 2시간 전에 진행됐다. 관리소장은 백화점 영업을 중지하고 고객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삼풍백화점 회장은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공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붕괴 사고 발생 17분 전. 긴급회의 중이던 이 회장과 경영진들은 고객과 직원들은 그대로 둔 채 자신들만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 17분이면 모든 고객들이 무슨 수를 쓰든 백화점을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설마 하는 안전 불감증이 불러온 사회적 살인이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20주기인 지난 201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로 양재시민의 숲에 마련된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 앞에서 유가족들이 참배하는 모습은 세월 속에 묻힌 고인들의 현주소였다.

그 후 어떻게 됐을까. 고객들을 지옥에 두고 혼자 빠져 나간 백화점 회장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것은 손님에게도 피해가 가는 것이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건물 안전에 대한 관리 감독을 맡은 관할 구청이나 관련부서의 담당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삼풍백화점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설계 변경 등을 승인해 준 전 서초구청장 이충우·황철민에게는 뇌물수수죄를 적용해 각각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300만원과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200만원이 확정됐다.

정상기 전 서울시 상정계장, 김수익 우성건설 형틀반장, 김재근 전 서초구청 주택과장 등 피고인 10명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추징금 300만원에서 선고유예 및 추징금 100만원의 원심 형량이 선고됐다.

붕괴 사고를 일으킨 25명을 향한 형벌은 그 어떤 죄의 무게보다 가볍게 끝났지만 29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에서 추가적인 보상이나 안전사고에 대한 다른 대안은 없었다. 다시 같은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같은 처리가 반복된다면 그때도 이럴 것인가.

이후 벌어진 많은 참사에도 대충 유사한 조사과정과 보상이 있었을 뿐이다. 유독 세월호 참사, 이태원참사, 고 채상병의 안타까운 죽음 등 야당에서 광화문에 촛불을 켜거나 온갖 단체들이 한데 입을 모아 성토하는 사건이면 결과는 달랐다.

대통령이 사고의 원인이라면 김영삼 대통령은 열 번도 더 탄핵되어야 할 판이었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도 불거진 여론의 거센 바람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사고의 진실, 합당한 보상, 국민적 여론은 정확해야한다.

바람이 거세다고 진실의 촛불이 횃불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인 반면 군중심리에 따라 아닌 것이 맞는 것이 된다면 이 또한 누구든 여론만 형성하면 된다는 논리에 젖어들 것이다. 올해로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지났다. 경기도 안산 도심 한복판에 200기도 넘는 유골함을 안치하여 영구히 안산을 추모도시로 남길 시설물이 들어선다.

70만 안산시민 절대 다수가 모르는 추모시설이 주변의 역세권 발달이라는 화려한 청사진에 묻혀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다. 특정 개인의 정치적 욕심이 불러일으킨 제2의 참사가 시작되지만 감히 누구하나 이를 만류하거나 재검토하거나 추진과정의 불투명에 대해 확인하려는 자가 없다.

훗날 망자에게 쏟아질 비판이나 도심의 심장부가 심장이 아닌 추모시설로 채워지는 문제를 모두 함구하고 있다. 22대 국회의원 당선자도 외형상 거론된 장점에 대해서만 찬성했고 야당들이나 시민단체, 지역 언론까지 모두 방관하고 함구하며 얼마 남지 않은 착공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같은 사고 다른 보상의 대표적인 사례가 역사 속에 묻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