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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생색은 나라가 피해는 국민이
[덕암칼럼] 생색은 나라가 피해는 국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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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누군가의 간을 빼서 다른 사람의 건강을 위해 기증한다면 기증받은 사람은 좋을지 몰라도 빼앗기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선행으로 알려지며 이를 시행하는 기관에서는 많은 박수를 받을 일로만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짓을 정치인들이 너무나 많이 하고 있다.

일단 선거에 의해 선출직 공직자로 뽑히는 날부터 유권자들에게 선심성 행정은 물론 온갖 정책으로 민심을 얻고 박수 받을 일만 찾는 인식이 문제다.

양복을 만들던 기술자가 공장에서 하루에도 수백 벌씩 쏟아지는 기성복이 나오자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이는 자연스런 변화다. 구둣방도 마찬가지고 사진관도 마찬가지다.

이미 과학의 발달과 기계화된 공업화가 대세를 이루자 변화에 수긍하고 이직하는 기술자들이 참으로 많았는데 이는 당연한 변환기에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가 희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렇지 않아도 될 분야에 개인의 영달을 위해 외형상 문제없는 일을 추진해 특정 분야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습은 근절되거나 다시 원상 복구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로컬 푸드다.

시골 마을에서 농협의 집하장으로 모아 다시 청과물이나 도매시장을 거쳐 경매를 통과하는 동안, 유통, 판매수익, 도매상과 소매상까지 이어지는 유통의 생태계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 과정에 중간 업자들이 폭리를 취하는가 하면 때로는 농가에서 밭을 갈아엎을 만큼 저가로 추수 농산물을 실어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물론 정부의 일 년 작물 계획이 틀어지거나 자연재해로 인해 잠시 농산물 가격이 춤을 추는 경우도 있었다. 이 정도라면 시골 마을이 특정 아파트나 기업과 자매결연을 맺어 직거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취지가 생산자나 소비자 간에 인기를 얻자 너도나도 따라 하는 분위기가 성행했다. 지자체가 아예 특정 장소를 로컬푸드라는 명칭으로 개장해 지역 주민에게 대 놓고 저가 판매를 실시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생색은 지자체 단체장이 내고 무너진 유통 시스템은 어쩔 것인가. 농·축·수산물까지 거래하며 기존 도매상·소매상들의 상권을 휘저어 버리면 이들의 생계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춘 유통 시스템은 지역 상인은 물론 일반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농산물을 신선하고 정확하고 안전하게 공급하는 기능과 역할이 있었다. 이런 생태계를 무시하고 일부 정치인들이 생색을 내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어디 로컬 푸드뿐일까. 지역 주민들의 인기를 얻을 만한 소재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그다음이야 어찌되든 관계치 않고 다수의 입맛만 맞추면 소수의 희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의견수렴도 않고 그 어떤 확인 절차도 없이 진행한다.

택시비가 비싸다고 똑버스나 기타 100원짜리 행복택시를 발표한다. 누가 득일까. 임산부는 100원 주고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박수를 친다. 반대로 택시회사에서는 지원금을 받는다 해도 손실이 가지 않을까.

시민 세금으로 시민들의 선심을 얻을 수 있는 일만 하다 보니 정작 써야 할 곳은 돈이 부족하다. 필자가 운영하던 생활정보신문도 이제 폐간을 앞두고 있다. 종이신문의 변화도 문제였지만 지자체에서 무료 구인·구직에 대해 전폭적인 홍보시스템을 구사하기 때문인데 안 해도 될 일까지 벌이면서 조용히 사라지는 직종이나 공익을 전제로 한 정책에 대꾸한마디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한다.

몇 해 전 대형 웨딩홀을 운영하다 문을 닫았다. 시기 질투로 인한 사소한 민원에 담당 공무원의 추상같은 영업정지가 속전속결로 진행됐고 결국 막대한 손실과 협력업체의 도산으로 마무리된 바 있다.

안 해도 될 일을 굳이 해서 공권력의 위신은 섰겠지만 지역 주민들의 생계나 지역발전의 방향은 외면 하는 처사였다. 당시 운영했던 웨딩홀의 가장 큰 어려움은 웨딩홀업체의 난립도 있었지만 평소 예식이 없을 때 유지 관리해야 할 기본적인 비용이었다.

당연히 이 비용은 예식을 치르는 혼주들에게 부담될 수 밖에 없는데 꼭 부담해야 할 비용만 청구한다면 평소 유지관리비는 누가 부담할 것인가. 이를 비싸다고 지적해 일반 시민들에게 무료로 장소를 빌려주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사용하고 피로연에 필요한 식사마저 출장 뷔페업체를 무시하고 각자가 알아서 하라면 그나마 버티고 있던 웨딩업체 입장에서는 아예 문을 닫는 게 맞지 않을까.

어째 하는 짓이나 생각하는 정책이 이렇게 자본주의 근간을 무시하고 특정 정치인들의 생색내기에 바쁠까. 기본을 무시하고 상식을 초월한 기안은 누가 낸 것일까. 그러라고 비싼 월급 줘가며 책상머리에 앉아 휴대전화나 조몰락거리다가 단체장에게 눈도장 찍을 만한 소재를 고안해 낸 것은 아닐까.

정부는 6월 26일 공공시설 추가 개방을 통한 청년 맞춤형 예식 공간 제공방안을 발표했고, 기존 개방된 국·공유시설 91곳에서 48곳을 추가로 선정해 모두 139곳을 예식장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027년까지 모두 200곳을 공공시설로 개방해 청년들의 결혼 비용 부담을 낮춰준다는 계획이다. 새로 개방되는 시설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립시설뿐 아니라 내장산국립공원 등 국립공원과 세종 호수공원과 같은 지자체 공공시설도 포함됐다.

사용료는 시설별로 무료에서 최대 56만 원이며, 수용 인원은 장소별로 50명~400명이다. 식음료 제공 업체 선정의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지역별 관련 업체에 대한 정보도 안내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립공원으로는 무등산 생태탐방원, 지리산 생태탐방원 등이 추가됐다. 그밖에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호남 연수원 대강당과 체육관, 광주 주말 작은 결혼식장, 영암 농업박물관 모정, 순천 낙안읍성 객사, 무안 여성가족 재단 공연장 등이다.

그런다고 결혼을 더 할까. 멀쩡한 국유시설에 국민 세금을 들여 리모델링한다는 것이며 화려한 예식장을 두고 누가 공공시설에서 평생 한 번뿐인 예식을 올릴 것인가. 예식은 결혼만 하는 곳이 아니라 피로연을 비롯한 폐백, 기타 주차시설 등 신랑·신부만을 위한 공간이다.

거기에 일반 국민들이 함께 보고 즐기는 미술관 관객, 등산객들까지 뒤섞인다면 누가 그런 곳에서 예식을 올릴까.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꺼내보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