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팅 업체

[덕암칼럼] 인간은 오묘한 존재
[덕암칼럼] 인간은 오묘한 존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구상의 많은 동·식물 중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참으로 오묘한 존재다. 오묘함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검색하면 형용사로써 심오하고 묘하다는 뜻으로 표기되어 있다.

실제로 현대과학을 이룬 과정이나 성과를 보면 그런 단어를 써도 괜찮을 만큼 대단한 일들을 해냈다. 문명의 이기는 편의을 향한 끝없는 노력으로 이제 생각조차 기계에 맡기는 AI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람의 욕심은 무한도전이라는 명분으로 스스로를 자멸할 수 있는 수준까지 겁없이 연구하는 바람에 지구촌 곳곳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나 다름없는 실정이다.

단순한 편익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 복지라는 명분으로 천천히 길들어 결국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가서야 오두방정을 떨지만 과연 해결책은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각설하고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상반기 전문대를 포함해 월평균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는 405만 8천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만2천명 늘었다는 소식이다.

비경제활동인구는 만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들이다. 일할 능력이 없거나 일할 수 있음에도 일할 뜻이 없어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물론 적당한 일자리가 없거나 여성의 경우 육아·가사·연로·심신장애 등이 원인일 수 있다.

문제는 초등학교부터 12년간 학교를 다녔다가 나름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전체 비경제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4명 중 1명 이상은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학력 대비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여기서 양질이란 힘들지 않은 일을 하고 돈은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돈을 주는 입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쓰지 누가 고학력자를 고용할 것인가. 특히 대졸 비경제활동 인구는 20대가 많은 편인데 인구가 줄고 있음에도 늘어난 연령대는 청년층이 의미하는 이 나라 장래는 암담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대책이 필요할까. 이들이 선거권을 가졌으니 또 청년이 어쩌고 하면서 미사여구를 동원해 말로 달래고 돈으로 퍼주고 비현실적인 창업이나 권하는 쇼를 할 것인가. 아니면 정신교육부터 제대로 시켜서 왜 일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려줘야 할까.

앞서 거론한 인간의 오묘함이 여기서 적용된다. 인간의 게으름 또는 안일하고 나약함도 끝이 없지만 막상 닥치면 그 어떤 일도 못하는 게 없는 것이 인간이다. 오늘의 핵심 소재인 400만 명의 청년들이 놀고 있다는 점은 그들이 못하는 게 아니라 사회구조나 정책들이 그들을 게으르고 연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옛말에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나름 의미가 있는 말이다. 당시에는 죽을 것만 같지만 그러한 경험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높은 면역력과 강인한 의지가 되는지는 겪어본 사람들이 잘 안다.

반대로 귀한 자식이랍시고 오냐오냐하며 키운 자녀들이 무슨 고생을 할 것이며 어떤 일이든 엄두가 나질 않는 것이다. 주변에는 주식 투자 잘하거나 로또 당첨으로 한방에 성공한 사람들과 자본주의의 화려함만 쳐다보니 결과 대비 과정은 무시하고 누리기만 바라는 것이 문제다.

마당을 쓸어본 적이 없는 세대. 장작불을 피워보거나 삽질을 해 본 적이 없는 세대다. 장화를 신거나 장갑을 끼고 망치질을 해 보거나 무거운 짐을 날라보지 못한 세대다. 먹고 살기 위해 또는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발광을 해보지 못한 젊은이들이 무슨 열정이 있으며 용기가 있을까.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몇 푼의 수당이 아니라 왜 용기를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논하자면 군 복무 시절 추운 겨울에 야전삽 하나로 참호를 파라고 명령하면 첫날은 대부분 삽자루도 못 들어갈 만큼 낮게 판다.

고참병의 폭력이 난무하고 상관들의 살벌한 명령이 하달되면 다음 날은 전날의 두 배만큼 팔 수 있다. 뿐일까. 숙달된 요령으로 며칠이 지나면 자기 몸을 엄폐하고도 남을 만큼 깊이 팔 수 있다.

비단 군 복무 뿐만 아니라 서른 가지도 넘는 일을 해본 경험을 되새겨 볼 때 처음에는 어설퍼도 하다 보면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기고 또 자신감도 병행되는 것이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젊은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고 그 대가로 몇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얕은 수작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어느 당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까지 포퓰리즘(Populism) 정책의 일환으로 청년을 운운하며 별짓을 다 해온 흔적을 보면 아니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손에 들고 게임과 기타 주식시장에 매달리다 보니 땀이나 눈물을 흘려볼 수도 없거니와 메마른 정서와 게으른 생활 습관이 몸에 배 이제는 다시 떨치고 일어나기에는 너무나 깊은 잠에 빠진 셈이다.

논농사를 어떻게 지을 것이냐고 물어보면 스마트 팜이 친환경적인 작물재배를 하기에 걱정 없다는 답변이다. 수산물 영역은 당연히 외국인 근로자들이 어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안다. 안 되면 수입하면 된다는 답변이다.

밥상을 내주겠다는 것인데 그러다 가격을 올리면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게 국제시장의 현주소다. 어떤 분야든 기반은 살려놔야 다시 일어서든가 하는데 급변하는 환경에서 근본적인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이쯤에서 통계를 놓고 독자들과 함께 산술적 계산을 해보자. 대한민국 인구 약 5,200만. 여기서 신생아부터 경제인구에 도달하기 전까지 학생 등 인구 800만. 65세 이상 퇴직해서 이력서 내밀 여지가 열악한 어르신 인구 1200만. 험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1차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100만. 군복무 하느라 경제활동을 못 하는 국군 60만 대군.

그리고 관련 분야에 먹고 사는 인구까지 100만 명. 집에서 가사를 돌보는 주부나 그 외 침상에 누워있는 노약자나 구치소나 교도소, 재소자들까지 모두 빼고 나면 누가 경제인구가 되며 400만 명이란 젊은 비경제 인구는 일을 해야 하는 경제 인구를 감안할 때 상당한 실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젊은이들이 용기를 갖는 것이고 그럴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