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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약소국의 서러움
[덕암칼럼] 약소국의 서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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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힘없으면 쥐 죽은 듯 조용히 살아야 한다. 그 대상이 약자라면 그리해야 하고 객기부리고 대들어본들 결국 남는 것은 참담함뿐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국가라면 강대국에 대들지 말고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줄을 잘 서가며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임금과 대통령이면 국민을 위해 치욕을 감수해야 하고 일개 국민이라면 살길을 위해 진실이고 정의고 다 내놓아야 한다.

이런 말에 적잖은 사람들은 뭔 소리냐 하겠지만 과거에도 먹혔던 말이고 지금은 더더욱 그래야 사는 길이다. 세계대전이 지구를 들볶던 시대에서 냉전이 끝나고 살만한데 다시 러시아의 벼랑 끝 선택으로 전쟁의 화신이 고개를 서서히 들고 있다.

러시아가 승리하면 힘의 논리의 표본이 될 것이고 진다면 공산국가들이 불안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가 승리하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데 대한 자신감을 얻을 것이며 북한도 남한에 대해 입맛을 다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EU가 계속 우크라이나의 희생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며 미국의 간접 개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두고 볼 일이다. 이쯤하고 약소국의 서러움에 대해 거론해 본다.

자고로 국방의 힘이란 현대전에서 첨단 무기의 소유인데 핵무장에 기초를 단단히 다진 미국, 러시아 등 많은 국가들이 전쟁 억지를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일본이 과거 저지른 죄를 현재에도 겉 다르고 속 다른 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한때 힘이 있어 조선을 지배했었지만 지금의 조선은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을지언정 일본에 비해 무엇 하나 꿀릴 것이 없는 나라다. 특히 남과 북이 합쳤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해방 이후 일본이 남북한을 대하는 입장을 보면 가관이다.

힘없을 때 식민지로 속국이 되었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한 마디로 과거와 현재를 구분해야 한다. 일본은 전범국가로 국방력 확장에 제한을 두고 있지만 남과 북은 다르다. 남한도 미국을 등에 업고 첨단 무기를 생산하지만 북한은 자체 핵무기 개발로 국제사회에서 탄탄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이런 남과 북이 합친 국방력이면 일본 정도는 한 달도 못가 전멸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남과 북이 갈라져 있으니 경술국치의 착각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치욕의 날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조선을 날로 삼켰으니 이보다 더 기쁜 날이 어디 있을까.

오늘은 한일병합 또는 경술국치로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 본토의 일부로 흡수되어 멸망한 날이다. 체결 과정에 문제점도 많았지만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고 이 조약으로 인해 한국은 약 35년간 일제의 불법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으며 일제가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에서 무조건 항복을 하고 패망한 1945년 8월 15일까지 암흑의 시간이었다.

조약명은 한일병합조약이다. 나라의 운명이 속국을 향하고 항일투쟁을 위한 열사들의 뜨거운 애국심이 들불처럼 일어나도 힘이 없는 국가의 장래는 암담하기만 했다. 고종은 나름 버텨보려고 이래저래 애를 썼지만 내부적인 친일행각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미 일본은 조선을 삼키기 위한 실질적인 작업은 이미 끝나 있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연이어 승리함에 따라 일제의 한반도 장악에 방해가 되는 국제 열강 세력들을 제거하면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약소국가의 서러움이기도 하겠지만 일본과 한국은 결코 가까이할 수 없는 과거가 현재도 존립하고 있다. 물과 기름의 관계는 일본이 자초한 일이지 결코 한국이 일본을 침략하거나 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태극기와 국가인 애국가도 금지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어떤 식이든 조선의 독립을 추진하던 고종은 1919년 파리회의에 의친왕을 특사로 보내려 하지만 일제의 독살로 실패했다.

1919년 1월, 윤치호 일기 내용에 따르면 완벽하게 건강하던 고종은 식혜를 마신 지 30분만에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사망했다. 팔다리가 엄청나게 부어올라서 바지를 벗기기 위해 통 넓은 한복 바지를 찢어야만 했고 입안을 닦아낼 때 이가 모두 빠져있고, 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로써 1392년에 고려를 무너트리고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5백여 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셈이다. 이런 경술국치의 연도를 아는 한국인의 비율이 갤럽 조사에 따르면 약 14% 뿐이었으며 특히 70대 이상 아는 사람의 비율이 5%로 극히 낮았다는 점이다.

특히 이날을 경술국치가 아닌 마이클 잭슨 생일로 인식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역사의식의 부재를 증명하는 예라 할 수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최근 한국 정부의 대일본 협조 사항이다.

2015년 군함도가 유네스코에 등재될 때도 조선인에 대한 강제노동을 그대로 표현하라고 권고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고 한국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통과시켰다. 이를 반영한 것일까.

약속하자마자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추정일까.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1,500명의 조선인에 대한 강제 동원이 삭제된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최근 벌어진 일이다.

지난 7월 25일 국회에서 재석의원 전원 동의로 사도광산의 등재의 철회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27일 정부는 국회 결정을 무시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으로 찬성표를 던져 만장일치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일본이 조선을 우습게 알았던 과거를 현재 한일 관계에서도 여전히 존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야당의 반발에 정부와 여당이 빌미를 주는 예라 하겠다. 물론 과거에 연연하는 것도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겠지만 역사의식도 없이 얻어터지고도 그새 망각하고 자존심이나 자국의 국민들 반일 감정만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금이라도 식민지 시대의 서러움을 재고한다면 이래서는 안 된다. 항일투쟁으로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던 열사들의 애국심을 고려한다면 이래서는 안 된다. 일본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까 굴욕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