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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법보다 밥, 점 하나에 다른 길
[덕암칼럼] 법보다 밥, 점 하나에 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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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사자성어 중 안분지족이라는 말이 있다. 편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는 뜻이다. 점 하나를 빼고 인분지족으로 해석하면 배설하면서 만족한다는 전혀 다른 뜻이 된다.

가수 김명애가 부른 ‘도로 남’의 가사를 보더라도 점 하나가 얼마나 큰 차이를 갖는지 쉽게 기억할 수 있다. 남이 님이 되고 정이 멍이 되는가 하면 돌이 돈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독자들과 말장난 같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점 하나에 대해 함께 공감대를 구해보기로 한다.

사람이 살면서 본의 아니게 소송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세상에 원해서 법정에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에는 항상 재판이 끊임없이 열리고 재판의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는 각기 다른 입장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돈이 없으면 법무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심지어 인터넷을 검색하면 준비서면, 답변서, 항소 이유서, 탄원서나 대법원에 제출하는 상고이유서까지 쓰게 되는데 막상 닥치고 보면 법률적 용어나 법조계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알게 된다.

사람이 감정을 품고 상대를 보면 소송 안 할 일이 없고 반대로 어찌하든 풀어보려고 대화를 시도하면 법정까지 갈 일은 없다. 물론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날 정도로 심각하다면 모르겠지만 막상 법대로 해봐야 결과는 대동소이하다.

일단 금전적인 면에서 견주어보면 법조계에서 필자를 좋게 볼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공익을 위하는 마음이니 넓으신 아량으로 헤아려 주길 바란다. 고소인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유죄판결을 끌어내는 데까지 들어가는 비용을 피고와 밥으로 대신하며 의견을 나눈다면 훨씬 경제적이다.

적게는 수백만 원부터 수천만 원 들어가는데 상대방을 구속해서 얻어내는 것보다 살려서 돈을 받아 내거나 진심 어린 반성을 받아내기까지 방법치고는 법보다 밥이 더 효과적이다. 일단 법은 자신도 힘들지만 방어하고 변명하는 상대방도 매우 힘든 상황이다.

인정하기보다 요리조리 자신을 합리화시켜야 빠져나갈 수 있으니 원고측에서는 더더욱 괘씸한 것이고 감정이 감정을 불러 결국에는 평생 원한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대로 차 한 잔으로 시작해 서로의 입장을 차분히 정리한 후 법보다 밥을 선택해 비싸고 맛난 것을 서로 나눠 먹으면 결과가 어떠해질까.

변호사를 수임하려면 인맥을 찾아 가장 전문성 있고 해당 판사와의 연줄을 확인해 선임해야 그나마 승소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여기서 줄보다 술을 택해 좀 더 경계심을 풀고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입장을 풀어본다면 아마 법조계 매출이 급락할 것이다.

1967년 데즈먼드 모리스가 발행해 1991년 김석희 번역가에 의해 국내에 소개된 책자. ‘털 없는 원숭이’의 내용에서 두 가지를 소개하자면 인간과 같이 악수를 하고 동족끼리만 먹이를 먹는다는 점이다.

악수는 자신이 상대방을 공격할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며 싸울 뜻이 없음을 손동작으로 알리는 셈이다. 상대방도 이를 보고 자신도 그럴 뜻이 없다는 의사를 같은 동작으로 표현하는 것이 인간의 악수와도 같은 행위다.

다음으로 먹이를 같이 나눠먹으며 동질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먹이가 인간의 밥이며 술은 같이 이성적 경계심을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된다. 같이 마시고 먹고 배설하는 일이야말로 법보다는 밥으로 해결해야 효과를 높이기 때문이다.

일단 저질러보고 그래도 안 되면 법으로 하는 게 어떨까. 법으로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은 선이 있다. 서로가 지켜야 할 선을 넘으면 현행범이나 분야별 범죄자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로 인해 파생되는 시장은 매우 광범위하다.

일단 사법경찰관, 검찰, 법원, 변호사, 법무사, 해당 기관의 모든 종사자, 교정기관인 구치소와 교도소 등까지 넓게 포함된다. 특히 교통사고나 이혼, 생계형 경제사범 등 일상생활에서 법원까지 가지 않고도 해결될 일들이 밥을 피하다 보니 법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변호사 선임 기준도 그러하다. 개인 변호사부터 법무법인, 로펌 등 법조계의 난다 긴다 하는 유명한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재판 기일도 지키지 않아 패소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일부에 국한되는 일이고 필자가 겪어본 일이기에 하는 말이지만 만약 변호사나 의사가 모든 의뢰인과 환자의 일을 자신의 가족 일처럼 생각한다면 아마 스트레스로 인해 단명하고 말 것이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평생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일이지만 계속 반복되는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일상속의 업무일 뿐이다. 일을 맡기는 입장과 이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은 견해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사회의 사회적 분위기다. 말로 해도 될 일도 일단 고소부터 한다. 승소는 다음 문제다. 특히 기득권에서 돈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이를 막기가 매우 어렵다.

가령 어떤 정치인이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러 놓고 이를 지적하는 언론인을 능력 있는 로펌을 통해 고소한다면 일단 피고 측에서는 유·무죄를 떠나 엮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법률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나 비용을 각오해야 한다.

설령 유죄판결을 못 받더라도 고소부터 하고 보는 경우, 여론은 원고를 범죄자로 보는 게 아니라 양쪽의 대립으로 본다. 밑져야 본전으로 고소하는 이런 경우를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 하는데 명예훼손죄를 뒤집어씌우는 사건에 많이 악용된다.

돈과 힘으로 범죄를 은폐하거나 원천적으로 덮기 위한 방법의 일종이다. 이런 경우는 밥도 술도 통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계획적인 소송이라 그런 것인데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가 갈수록 추락하는 것도 이러한 통계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법보다 밥, 줄보다 술,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화해와 용서가 성행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