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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3,000억 원이 애 이름인가
[덕암칼럼] 3,000억 원이 애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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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BNK경남은행 간부가 횡령한 3,000억 원은 단순한 금융사고가 아니라 현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30만 원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던 일반 서민들에게 이 사건은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탄식이 나오게 했다.

횡령의 주범인 투자금융부장 이 모 씨는 1심에서 징역 35년 추징금 159억 원을 선고받았고 공범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은 간부의 아내는 2심에서 1심 선고 1년 6개월에서 감형됐다.

이 씨는 한국투자증권 직원 황모 씨와 공모해 2014년 11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출금전표 등을 20차례에 걸쳐 위조·행사하는 방법으로 회삿돈 2,286억 원을 페이퍼컴퍼니 등 계좌로 보낸 후 임의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도 이 씨 단독으로 2008년 7월∼2018년 9월 같은 수법을 사용해 회삿돈 803억 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이 지난해 9월 이 씨를 구속기소 할 때 공소장에 기재한 횡령액은 1,437억이었지만 1,652억 원의 추가 횡령 사실을 반영해 이를 합치면 이 씨의 횡령액은 3,089억 원으로 금융권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씨는 재판 과정에서 약 200차례의 반성문을 법원에 제출한 상황이지만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영향을 끼칠지는 의문이다. 주범 이 씨의 아내 판결문에서 서울중앙지법은 범죄수익 환수, 관련자들 사건의 선고형 결과를 종합하면 원심의 형량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간부의 아내는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남편의 횡령 자금 4억 원을 빼돌려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수표로 바꿔 김치통 내 김치 사이에 비닐로 숨겨둔 혐의로 검거된 바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범죄가 아니라 이 씨의 가족까지 합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의 친형은 이 씨에게 자금세탁업자를 소개해 주고 자금을 받아 상품권 할인판매 등의 방법으로 현금화하는 등 범죄수익 은닉을 주도한 혐의로 지난 3월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사건이 대외적으로 불거지자, BNK경남은행은 이번 횡령 사고와 관련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 직원들에게 지급된 성과급 일부를 환수하기로 의결했으며 그 금액은 1인당 100만에서 200만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는 엄청난 횡령액이 발생할 때까지의 관리시스템이나 감사 기능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범행 기간이 2008년부터 2022년까지 14년이다. 이쯤 되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주변에서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고 이 씨의 씀씀이나 기타 자금흐름을 보더라도 티가 났을 일이다.

그러기에 알고도 묵인했다면 공범이 더 있을 것이며 몰랐다면 금융기관의 관리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과연 이번뿐일까.

드러나지 않았을 뿐 잠재적 위험은 언제 어떤 식으로 불거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미 금융기관의 횡령 사건은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단골 메뉴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모든 통로를 여는 마법의 열쇠다. 

고객의 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일정 이자를 붙여 언제든 찾을 수 있어야 하며 예금유치로 은행의 자산가치가 정해진다. 즉, 은행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자본주의 근간이다. 근간이 흔들리면 고객들은 한꺼번에 인출하려고 난리를 칠 것이고 금고가 텅 빈 은행은 아무런 존립 의미도 없다. 

이미 우리은행 김해지점에서도 180억 원 횡령 사건이 터졌고 NH농협 은행에서도 117억 원을 횡령한 사건이 터졌다. 뿐일까. 전직 국민은행 직원도 2020년 근무 당시 허위로 서류를 꾸며 26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쯤 되면 사고가 아니라 사기다. 고객의 소중한 자산을 빼돌린 파렴치한 범죄다. 업무 과정에서 실수로 생긴 과실이 아니라 대 놓고 고의성이 있는 범죄다.

물론 형사 처벌도 받고 민사적 책임도 따르겠지만 개인의 일탈이 금융계의 신뢰를 추락시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흐름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면 35년이 아니라 350년을 살아도 부족하다. 이런 도덕적 해이 현상을 모럴해저드(moral hazard)라고 한다.

불꽃은 금융기관을 넘어 금융감독원의 기능까지 의심케 한다. 도둑이 들었을 때는 사전에 문단속하지 못한 죄도 물어야 하고 일개 순경이 중대 범죄를 저지르면 관할 경찰서장이 지휘 책임을 져야 하는 것과 같다. 횡령한 이 씨만 도마 위에 올릴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인지하고도 묵인했다면 침묵은 묵시적 공범이라 했다.

은행 지점장은 물론 금감원 관리 책임자까지 옷을 벗어야 맞는 것이다. 은행의 횡령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한몫했다. 정부가 은행이 망해도 구제 대책을 세워준다면 은행이 대출을 겁 없이 해 주게 되는데 이는 정부를 믿고 업무를 소홀히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도 당사자만 쳐내면 나머지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안일함이 또 다른 횡령 사건을 방치하게 되는 원인이고 그러한 이유로 같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과 같다. 또 피보험자가 상당한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사고가 나도 보험만 믿고 설쳐댄다면 이 또한 모럴해저드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경남은행 사건을 계기로 관련자들의 후속 처벌이 뒤따라야 같은 현상이 재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루하루 겨우 벌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다.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늦은 시간까지 가게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심경은 겪어본 자만이 안다.

폭염에도 시원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걸핏하면 성과급 잔치에 돈 아쉬운 줄 모르는 은행들이 많다. 공무원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은행원이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이 대출이라도 노크하면 슈퍼 갑이 되는 자리에 앉아 걸핏하면 정부 방침을 앞세운다.

DSR이라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내세우며 충분한 담보가치에도 외면한다. 이자 상환이 하루만 늦어도 연체 기간을 적용해 신용 등급을 낮추는가 하면 이자로 먹고살아야 할 은행이 외면하는 바람에 제2 금융기관에서도 외면당하고 결국 고리의 사채시장으로 내몰리다 벼랑 끝에 서면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한다.

은행이 국민의 신뢰를 지켜야 하는 사회적 책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