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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의 문학산책] 최순애의 '오빠 생각'과 주인공 최신복
[박상재의 문학산책] 최순애의 '오빠 생각'과 주인공 최신복
  • 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email protected]
  • 승인 2023.09.19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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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오빠 생각」과 「고향의 봄」은 지금도 국민동요로 애창되는 노래이다. 「오빠 생각」은 최순애가 지었고, 「고향의 봄」은 이원수가 지었다는 것 쯤은 대부분 다 아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원수(1911~1981)와 최순애(1914~1998)가 부부였다는 사실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수원 소녀 최순애는 열한 살 때  「오빠 생각」을 발표했다. 최순애는 개벽사에 근무하며 소파 방정환을 지척에서 도왔던 최신복(필명 영주, 1906~1945)의 여동생이다. 최신복은 외아들로 아래로 여동생 다섯(신애, 중생, 순애, 영애, 경애)이 있었는데, 셋째 동생이 최순애이다. 최신복은 수원에서 화성소년회를 조직하여 소년운동에 힘쓰고, 동아일보 수원지국 기자로 일하다 1927년 1월부터는 개벽사에서 소파 방정환을 도와 잡지 <어린이>, <학생>, <소년> 등의 편집에 종사하였고, 한국 최초의 수필 잡지 월간 <박문>을 발행하였다. 

1931년 방정환 사후에도 방정환 묘소를 돌보는 등 소파를 위하는 일을 하다 해방을 7개월 앞두고 폐결핵으로 영면했다. 최신복은 1922년 배재고 졸업 후 일본 니혼대학 유학 중에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참상을 목도하고 귀국하여 일경의 감시를 받으며 교사와 기자 생활을 했다. 최순애가 <어린이>에 「오빠 생각」을 발표하던 1925년 가을(11월호 발표) 무렵에 순애의 오빠 신복은 주로 서울에서 하숙을 하며 지냈다. 어머니가 일본 재유학을 강력하게 반대했고, 일경의 감시도 심해서였다. 

마산에 살던 열다섯 살 소년 이원수는 <어린이> 지에서 최순애의 「오빠 생각」을 읽고 이듬해인 1926년 이 잡지  4월호에 「고향의 봄」을 투고하여 입선했다. 최순애가 이원수보다 6개월 문단 선배인 셈이다. 이원수는 「오빠 생각」이란 동시가 마음에 들어, 최순애의 영원한 오빠가 되고 싶었다. 같은 잡지에 글이 실렸다는 구실로 최순애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얼마 후 수원에서 기다리던 답장이 왔다. 이렇게 8여년 동안 편지와 사진을 주고받으며 애뜻한 마음을 키운 두 사람은 장래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1935년 3월 이원수는 최순애가 사는 수원역으로 가기 위해 기차표를 끊었지만, 만나기로 한 그날 일본 경찰에 검거되고 말았다. 함안금융조합 서기로 일하던 이원수가 ‘함안독서회 사건’으로 검거됐다는 소식이 최순애 집에 알려지자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이원수를 처음 만나는 날 최순애는 윗옷에 꽃을 달고 숄을 두르고 수원역 대합실에 있었다. 서로 금방 알아보기 위한 표시였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이원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원수는 1935년 4월부터 1936년 1월까지 10개월의 수감생활(집행유예 5년)을 치르고 난 뒤에야 최순애를 만날 수 있었다.

이원수와 최순애의 결혼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최순애 집안에서는 이원수가 편모에 집안이 워낙 가난하기 때문에 반대가 심했지만, 최신복은 이원수의 문학적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집안의 반대를 설득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1936년 이원수와 최순애가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최순애는 「오빠 생각」 초고에 ‘비단 구두’ 대신 ‘비단 댕기’라고 썼는데, 오빠인 최신복이 ‘비단 구두’로 고쳤다고 회고했다. 최순애는 잡지출판 일로 서울에 자주 가서 소식도 없는 여덟살 위 신복 오빠를 그리워하며 「오빠 생각」을 쓴 것이다. 최신복도 동요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해지는 작품이 많지 않아 그의 문학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부인 차원순이 6·25 피난길에 최신복의 각종 원고 및 자료 등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분실했기 때문이다.

누구가 부는지 꺾지를 말아요/마디가 구슬픈 호드기오니/호드기 소리를 들을 적마다/내 엄마 생각에 더 섧습니다” -최신복의 「호드기」 전문-

요즘 수원에서는 (사)수원문화도시 포럼이 주관하여 「오빠 생각」 동요작가 최순애 노래비를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수원에 노래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오빠 생각」이 발표된 11월은 시기상으로 너무 촉박하겠지만, ‘뻐꾹뻐꾹 뻐꾹새’가 우는 내년 5월 쯤이면 괜찮을 것이다. 그 장소는 이원수의 「고향의 봄」 노래비가 있는 팔달산 중턱도 좋고, 최순애 시인이 다녔던 매향여상이나 과수원이 있었던 장안문 부근 북수동도 고려해볼 입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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