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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기유각서 그날 이후
[덕암칼럼] 기유각서 그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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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909년 7월 12일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사이에 체결된 기유각서는 대한제국 사법 및 감옥 사무 위탁에 관한 각서이며 교도 행정권을 일본제국에 양도한다는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사법권이 박탈되었고 순종의 실권도 전격 박탈됐고 일본의 식민지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됐다. 당시 고종의 뜻과는 무관하게 대한제국의 내각 총리 대신 이완용과 일본의 2대 통감 사이에 맺어진 조약이다.

내용을 보면 한국의 사법과 감옥에 대한 사무가 완비되었다고 인정될 때까지는 사법과 감옥에 대한 사무를 일본 정부에 위탁하며 그 과정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진 일본인과 한국인을 한국에 있는 일본 재판소와 감옥의 관리로 임용한다고 명시해 친일파의 출발이 되었음을 공식 발표했다.

한국의 지방 관청과 공공 관리는 일본의 당해 관청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또는 이것을 보조한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사법과 감옥에 관한 일체 경비를 부담한다.

이로써 일본제국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정치적 권력을 강탈했고 완전히 일제의 꼭두각시가 된 대한제국은 사실상 멸망하게 되었지만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서 이미 무효임을 한번 더 확인한 바 있다.

경찰권도 114년 전인 오늘 1910년 6월 24일 한일 약정 각서로 박탈됐다. 일명 기유각서 체결로 완전 식민지화의 공식적인 절차가 마무리 됐다.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친일파의 매국으로 인한 조선 민족의 피폐함과 침탈 과정은 이미 역사를 통해 충분히 고증되었으니 제쳐놓고 한 나라의 사법권이 남의 나라로 넘어갈 경우 생길 수 있는 식민 국민들의 어려움은 예상 밖의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반면 많은 애국열사들이 나라 안팎을 다니며 독립을 외쳤지만 한번 빼앗긴 주도권을 다시 찾아온다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36년간 일본의 수탈은 매우 조직적이고 악랄했으며 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눈치까지 봐가며 온갖 요식 절차도 밟아왔다.

지금 돌이켜봐도 일본은 중·장기적 계산으로 조선의 살을 발라먹고 뼈까지 우려먹는 철저한 침탈을 자행해 왔고 그러는 틈을 타 친일파는 내리 3대가 잘 먹고 잘사는 삶의 울타리를 지켜왔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며 아마 같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라를 팔아 자신과 후손의 영달을 챙길 것이다. 기유각서 한 장의 문서로부터 시작된 한 나라 국민들의 현실은 참담했다.

식민지 기간 내내 숨조차 못 쉬고 일본 순사라 하면 울던 아이도 그칠 만큼 공포가 서슬 퍼런 날들이었다. 어렵사리 광복되어 군국주의의 망령은 잠들었지만 언제 다시 깨어날지 알 수 없는 것이 일본의 침략 근성이다.

요즘 남과 북이 풍선으로부터 시작되어 철책 선을 손보느니 푸틴이 북한을 방문해서 친선 분위기를 돋우니 하지만 이런 대치 분위기에 속으로 박수를 치는 건 여전히 일본이다. 한번도 외부로부터 침략 받아본 적 없는 일본이 미국에 원자폭탄을 얻어맞은 후 80년이 넘도록 쥐 죽은 듯 살고 있는 것은 힘의 논리다.

놓친 고기가 커 보인다고 했던가. 조선은 일본에게 식민지 시대의 고기 맛을 잊지 못하게 하는 나라인가. 요즘 남과 북이 돌아가는 판세가 그러하고 대한민국이 영남·호남, 진보·보수로 나뉘어 이념 갈등을 벌이는 모양새가 그러하다.

어렵사리 다시 찾은 나라를 누구 좋으라고 분열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다시 한번 기유각서를 작성해 타국의 사법기관에 우리 사법권을 넘기는 날이 온다면 과연 식민지 시대처럼 애국열사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나라를 구할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국민들을 대상으로 청년은 게으르게 만들고 여자는 아이를 낳지 않게 떠받들며 노인은 폐기물 취급하는 나라가 무슨 나라를 구하고 구국의 결단을 내릴 것인가. 어찌하다 열악한 인권을 다시 살린다는 명분으로 군인들은 아침 구보조차 거부할 만큼 사기가 땅에 떨어졌고 학생들은 선생님 알기를 동네 후배보다 더 함부로 대하는 시대가 됐을까.

도덕과 윤리가 곤두박질친 나라에서 무슨 희망과 찬란한 미래를 기대할 것인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 겉으로만 화려한 국격을 갖추고 속으로는 멍들고 망가진 통계들이 한둘이던가. 지금이라도 무엇이 구국의 대안이고 어떤 수치들이 국력을 가늠할 수 있는지 정치인들은 양심에 손을 얹고 국민들은 비진취적인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각자도생의 길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인들이 펼친 잔칫상에 수저만 놓고 입만 벌리며 살아가려는 게으름의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장 대표적인 장점은 악착같은 생활력과 근면, 검소, 자조, 협동 등 성실함이었다.

독일에서도 이를 인정했고 세계 각국의 교포들이 이를 증명했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장 게으르고 불행하며 자살률과 청소년 흡연율이 1위를 기록하고 기성세대들은 낙태율과 저출산 1위를 기록했다.

외관상 조선, 자동차, 휴대전화 등 경제적 지표나 방탄 소년단 등 한류 문화가 국격을 높인 것 같지만 내면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만큼 곯았다. 이미 자영업자들은 적신호가 들어온 지 오래고 지방의 인구 소멸로 인한 국가적 재앙수준의 변화도 막을 길이 없게 됐다.

겉으로는 대한민국 치안이 완벽한 것 같지만 전화사기에도 속수무책이고 고소·고발이 난무해 사법기관은 벌어진 사건을 수습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결론적으로 범죄자들 입장에서는 합법을 가장한 불법들이 판을 쳐도 수사 대상이 되기에는 멀고도 먼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이쯤 되면 기유각서를 쓰지 않아도 나라기 위기임에는 분명하지 않은가. 현대판 구국의 열사들이 요원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