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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민족 대명절 추석이 사라진다
[덕암칼럼] 민족 대명절 추석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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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추석이 다가오면서 시장과 백화점은 물론 거리마다 선물꾸러미를 손에 들고 다니는 풍경이 명절을 실감하게 한다.

14일 토요일부터 18일 수요일까지 5일간 연휴에 19일과 20일 연차·월차를 쓰면 21일 토요일과 22일 일요일까지 더해 장장 9일간이나 연휴를 누릴 수 있다.

비가 오면 우산 장수가 대박 나지만 소금 장수는 울게 된다. 연휴가 길어지면 근로자에게는 신나는 명절이겠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자영업자들과 기타 일용직들은 그리 즐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명절이면 더욱 바빠지는 공항, 항만, 열차, 버스 등 대중교통이나 택배, 유통 등 관련 업종들도 마찬가지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상인들의 애씀이 시장판의 풍성함에도 엿볼 수 있다.

앞서 공원묘지에는 벌초하러 다니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했다. 벌초하는 시기는 봄과 가을 두 번이 보통인데 봄은 한식날, 가을에는 추석 몇 주 전에 미리 벌초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첨단 문명이 득세한다지만 조상들의 벌초나 성묘마저 도외시 한다면 부모와 조부모, 더 올라가면 선산에 모셔진 모든 조상들에 대한 의미나 가치는 어떻게 될까.

이미 사망한 고인들의 영혼이 명절날 차례 지낸다고 더 달라질 것은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지만 적어도 묘를 만들어 절을 하는 후손들의 모습은 자신을 낳고 길러준 선친들에 대한 예절이자 도리다.

모든 것을 과학이나 논리적으로만 계산한다면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과 계좌에 적립되는 것만이 우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묘는 매우 중요한 것이며 향후에도 이러한 풍습은 보존되어야 한다.

전 세계 어디서나 선조들에 대한 예의는 그 나라의 도덕적 가치와 역사, 그리고 민족의 존재감을 가늠하게 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다음 풍경으로 먹거리나 의상을 손꼽을 수 있는데 시대가 변하고 핵가족화되면서 명절 연휴의 분위기는 점차 달라지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퇴색되어가고 있다. 먼저 먹거리는 집안의 가족들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거나 약과, 녹두전, 식혜, 쇠고기 산적 그리고 각종 나물로 맛나게 비벼 먹는 나물 비빔밥을 손꼽을 수 있는데 언제부턴가 여성들의 가사 노동이 명절날 폭등한다며 이혼통계까지 곁들여 음식문화의 가치를 추락시켰다.

과거에는 그랬다. 남성 우월주의 가풍이 지배적인 시대에 대부분의 가사 노동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요즘 그런 가정이 있을까. 있다 해도 극히 일부분이지 절대다수의 가정이 남녀가 둘러앉아 함께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대세다.

친척들이 함께 모여 평소 하지 못했던 대화와 집안일에 대한 계획. 또는 잡다한 일상의 이야기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명절에만 볼 수 있는 훈훈한 풍경이다. 물론 2세들이 함께 모여 사촌이라는 친척 관계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다.

음식은 만드는 정성과 함께 나누어 먹는 정감이 어우러지는 소통의 장이다. 이를 가사 노동으로 확대시켜 가정 파탄의 원인으로 손꼽는 풍토는 근절되어야 한다. 이런 주장을 촌스럽다거나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치부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1년에 2번 나눠 먹는 자리마저 번잡스럽다거나 힘들다면 배달업체의 신세를 지는 수 밖에 없다.

모두 인터넷을 검색해 쿠팡이나 기타 홈쇼핑을 통해 배달시키고 남은 음식물쓰레기는 일회용 포장만 산더미처럼 내놓게 된다. 어느 쪽을 택하든 각자의 몫이겠지만 음식은 그렇다 치고 다음 의상에 대해 논해보자.

대대로 한복은 우리민족의 명절 분위기를 돋우는 가장 대표적인 볼거리다. 요즘은 개량한복까지 다양하게 생산되면서 눈이 돌아갈 만큼 화려한 의상들이 전문 한복집에 가득하다. 비용이 부담되어 인터넷으로 중고 한복을 주문하면 10만원 미만의 한복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형형색색의 의상들이 즐비하지만 정작 거리마다 한복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용인민속촌이나 서울 광화문에서 대여해 주는 한복이 더 인기다. 사람의 체형이란 20세가 넘으면 더 이상 큰 변화가 없다.

있다면 색상이나 디자인이 다른 한 벌을, 없으면 자신과 잘 어울리는 한복 한 벌 정도는 있어야 한국인이라 하지 않을까. 우리 것이 소중하다면 이 정도 투자나 관심은 있어야 하리라 보는데 독자들께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

다음으로 풍습이다. 풍습을 어원에서 찾아보면 풍속과 습관을 아우르는 말이다. 추석이면 송편을 빚는 것 외에도 둥근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달구경도 있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강강술래.

그 해의 첫 수확으로 거두어들인 햅쌀로 술을 빚는가 하면 청주를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에 물을 섞어 막걸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밖에 줄다리기, 씨름, 연날리기 등이 있다. 이렇듯 중요하고 지켜야 할 풍습들이 있음에도 현실은 어떠한가.

다 좋다. 시대가 변하니 풍습도 변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음식, 옷, 풍습 아무것도 지키지 않는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연휴를 맞이해 평소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 해외로 여행을 떠나고 일각에서는 호텔에서 즐기는 호캉스, 자연과 어우러지는 휴양지로 가족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모처럼 쉬는 날이니 마음껏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점차 사라지는 우리 것을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훗날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까. 자식들이 출가해 세상 물정이나 예절을 모르면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이 없다고 판단한다. 교육이란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있고 집에서 어깨너머로 알려주는 지혜가 있다.

지금 같은 현실이 10년만 더 가면 그때는 귀향길이 없어지고 10년 더 가면 명절이라는 의미조차 사라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