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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열린 대통령 필요
귀가 열린 대통령 필요
  • 원춘식 편집국장 대우 wcs@
  • 승인 2007.10.3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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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 보좌하는 각료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자질이 가장 큰 관건이다.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우리가 어려서 들었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옛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 이야기는 비밀은 감춰 질 수 없다는 교훈으로만 새겨서는 안된다. 비밀이 밝혀진 것을 안 임금은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린 귀를 떳떳이 보이며 백성의 소리를 많이 들었다는 대목이 중요하다. 대통령에게 바라는 소망은 국민의 작은 소리조차 귀담아 들어달라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 성군으로 칭찬받던 임금의 공통점은 직접 백성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1430년 조세 제도에 대해 신료들은 모두 자신의 의견이 백성을 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세종은 직접 백성의 의사를 듣기 위해 8도에 걸쳐 촌민(村民)을 중심으로 약 17만3000명의 의견을 조사해 반대한 백성의 뜻에 따랐다. 영조도 1750년 균역법(均役法)을 도입하면서 백성의 의견을 조사해 부담을 경감했다. 정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백성과 만나 고충을 들으려 했다. 정조는 서울이 아닌 오늘날 수원인 화성(華城)에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세워 궁궐을 벗어나 수시로 화성에 행차했다. 임금이 거동하는 곳에는 백성이 모여들어 괴로움과 억울함을 직접 하소연했다. 글 아는 백성은 문서로, 글 모르는 농투성이나 무지렁이들은 어가(御駕) 앞에서 꽹과리를 쳐서 임금에게 알렸는데, 이를 상언(上言)과 격쟁이라고 했다. 정조 재위기간(1776~1800) 동안 모두 4400여건의 상언과 격쟁이 있었다. 백성이 호소한 내용은 조상의 신원(伸寃)과 포상 등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과도한 세금, 관리의 수탈, 토지를 침탈 당했다는 것, 소송에서 억울하게 졌다는 것 등 아주 다양했다. 정조는 직접 사건 처리를 지시해 상당부분 백성의 원억(寃抑)을 해소하였다. 숙종은 정사보다 야사에 더 많이 등장하는 성군이다. 대개 숙종은 야밤에 아무도 모르게 궁궐을 빠져 나와 평민으로 변장하여 실제 백성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고통을 들었다. 암행어사 이야기도 숙종 때가 제일 많다. 실제 암행어사가 한 역할은 이야기에 전해오는 것처럼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백성에게는 정의를 실현하는, 또 그들의 애달픔을 직접 임금에게 전달해주는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훌륭한 암행어사의 활약상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고 있다. 역사를 돌아볼 때, 백성과 동떨어져 있는 임금은 훌륭한 임금이 되지 못하였고, 심한 경우에는 나라마져 잃었다. 중국 특히 명나라에서는 황제가 궁궐을 나가는 자체가 불가능했다. 실제 9세에 즉위한 신종(神宗·재위 1572~ 1619)은 마지막 30년 동안 한 번도 자금성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렇게 백성과 절연된 황제는 환관의 손아귀에서 놀아났고 결국 나라까지 잃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정조 사후 순종때까지는 상언과 격쟁이 어느 정도 이어졌지만, 제도정치가 극심한 헌종 때 이후는 사라졌고 마침내 국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귀와 가슴이 열린 대통령이 필요하다. 현재의 대통령이 왕조시대의 임금과 같지는 않고 그 때의 임금처럼 되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청와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대통령은 구중궁궐에서 환관과 관료에 둘러 싸인 임금과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의 열린 귀와 가슴이 더 중요하다. 12월 대선(大選)에서는 임기 후 국민의 하소연을 싫증내지 않고 마냥 들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대통령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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