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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룩 업(Don’t look up)
돈 룩 업(Don’t look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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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현 경기도의원
서정현 경기도의원

 

직경이 6~10km에 이르는 혜성이 지구로 돌진 중이다. 그대로 충돌하면 인류의 종말이 예견되는 상황. 남은 시간은 6개월여. 영웅이 등장해 인류애를 바탕으로 멋지게 혜성과 지구의 충돌을 막아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진부한 스토리는 20년 전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혜성의 존재 자체를 의심한다. 혜성의 충돌과 인류의 종말은 유명 연예인의 가십보다 못한 이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가볍고, 인류의 종말도 정치적 도구에 불과한 사회.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의 이야기다.

혜성이 다가오는 것이 하늘에서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외친다. 저스트 룩 업(Just Look Up). 고개만 들면 혜성을 볼 수 있게 됐다. 이제 고개만 들면 진실은 눈앞에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도 믿지 않는다. 그것이 혜성이 아닐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진실의 반대편에서 외친다. 돈 룩 업. 하늘을 바라보지 말라. 모두에게 인류를 구할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거대 자본은 정치권력과 결탁해서 인류의 종말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 누구나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사회에서, 역설적이게도 진실은 지겹도록 소통되지 못했다.

영화는 인류의 종말 앞에서도 통합될 수 없는 현대 사회와 사익에 매몰된 정치권력을 풍자하며 현실을 매섭게 꼬집는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버림을 받았고, 진실을 폭로하는 것은 반사회적 행위가 됐다. 누구보다 진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권력의 지척에서 진실을 왜곡하는 것에 동조하고 침묵했다. 권력과 결탁한 거대 자본의 논리가 사람들을 속이고, 기망당한 사람들은 자본과 부패한 권력에 지지를 보냈다. 그렇게 다함께 살아갈 기회를 놓치고서, 종말의 끝에서 진실을 마주한 순간, 나약한 인간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뿐이었다.

영화에 우리 사회를 투영해봐도 보기 좋게 들어맞는다. 민주주의는 모두에게 자유로운 소통의 기회를 부여했지만, 소수의 견해는 다수 앞에서 지나치게 무력하다. 자본과 권력은 왜곡된 정보로 다수의 지지를 만들고, 진실은 무섭게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수의 견해는 반대의견을 가진 자를 조롱하고 희화하며,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소수의 전투 의지마저 빼앗아 버린다. 민주주의, 정보 혁명, SNS, 소통의 창구가 더욱 넓어진 사회에서, 그토록 원하는 진실은 지겹도록 소통되지 못한다.

경기도의회는 어떠한가.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의회다운 의회를 꿈꿨으나, 대립, 갈등, 불신, 분열의 의회가 됐다. 소통보단 독단이, 화합보단 정쟁이, 협치보단 무시가 판을 치는 의회. 당적이 같아도 소용없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가차 없이 할퀴고, 작은 권력이라도 쟁탈하는 것에 거침이 없다. 도민의 살림보다 의원의 안위에 목소리가 크고, 자기 주장만 몰두한 채 소통은 없다. 배려와 존중은 어울리지 않고, 실리 잃은 정쟁에 애꿎은 공직자들만 생고생이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다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12월 17일. 오전에는 눈이 왔다. 경기도의회는 회기를 하루 연장하고, 막바지 본예산 조율에 들어갔다. 12월 16일 정기회 마지막 날의 밤, 156명 경기도의회 의원들은 의회에서 꼬박 밤을 지새웠다. 토론도 있었고, 기다림도 있었다. 마침내 내년도 예산안이 상정되고 가결되는 순간, 어디서 시작했을지 모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박수는 무엇을 위한 박수였을까. 왜 나는 그때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을까.

인류의 종말을 앞둔 시점에 영화의 주인공은 멀어진 가족을 찾았다. 타인과의 소통에선 진실을 말해도 소통하지 못했지만, 멀어진 가족들과는 단지 먹을 걸 좀 사왔다는 말로 화해해 나아간다. 그렇게 영화는, 진정한 소통은 말이란 표현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우린 정말 다 가졌었어, 그렇지?(We really did have everything, didn’t we?)" 우리가 원했던 것이 결국 무엇이었는지에 의문이 드는 순간, 영화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진 진짜 소통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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