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팅 업체

용서는 삶의 지혜다
용서는 삶의 지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서 그것은 종교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정책(政策)일 수도 있다. 삶의 지혜고 삶의 숨통이다. 미움과 질투 그리고 원한 하나씩을 가슴속 깊이 품고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에게 있어 용서 없는 삶은 얼마나 고되고 각박한가. 우정을 버린 친구,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감정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이런 감정의 장애물을 뛰어 넘는 유일한 길이 용서라고 필자는 본다. 지금 우리 사회를 둘러보라. 미움과 원한, 대립과 갈등의 칼날이 번뜩이지 않는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서로가 서로를 가해자로 보고 증오와 미움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현재의 집권개혁세력은 대체로 개발독재 세력의 피해자다. 부당하게 감옥에 갔거나 모진 고문을 겪기도 했으며 직장을 잃기도 했다. 반체제세력의 막내로 긴 세월을 살아온 이들에게 기득권  보수 세력은 아무런 연민의 정을 보내지 않았다. 이들이 집권했다. 실세가 되었다. 자신을 감옥에 보내고 어둠의 자식으로 살게 한 기득권 세력에게 증오와 원한이 없을 수 없다.

보수 기득권 세력도 분을 삭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늘날 먹고 살만한 게 누구 덕인가. 개발의 시혜는 고루 나눠 가지면서 왜 독재의 악령만 우리에게 덮어씌우느냐. 서로가 상대를 가해자로 보고 있기에 이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가위 내전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내전상황은 해방 공간의 좌우 갈등 대립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정치권끼리의 편 가르기가 국민의 편 가르기로, 친미냐 친소냐 친일이냐 항일이냐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 대립으로 치달으면서 이념상 민주와 공산과의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숱한 당쟁과 사화(士禍)가 보수와 개혁, 이상과 현실, 원리와 실제간의 끝없는 투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겸손한 권력의 모범을 보일 때다.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먼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서로를 용서하라. 서로가 시대적 역할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라. 그리고 사과하라. 먼저 용서하는 자가 승자다.

좌우합작이나 중도 통합론만큼 기회주의적이고 회색적인 게 없다지만 이런 화합과 절충이 우리 역사에 없었기 때문에 그 끝이 허망했고 국운이 쇠했다. 갈등을 부추기고 대립을 격화시키는 독한 권력의 칼끝을 서로가 거둬라.

용서와 사과 그리고 화합의 탕탕평평 책이 나와야 위기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