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팅 업체

[덕암칼럼] 객사의 아픔은 국민이 공유해야
[덕암칼럼] 객사의 아픔은 국민이 공유해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생명은 누구의 것이든 소중하다. 수학여행 갔다가 여객선이 침몰해 사망했거나 총을 들고 공해상을 지키다 북한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거나 모두 소중하다.

이태원 골목길에 몰려 축제를 즐기다가 압사사고에 휘말렸거나 실종된 국민을 찾으러 군복을 입고 깊은 물에 휩쓸렸거나 멀쩡한 중랑교 다리가 붕괴되어 사망하거나 모두 소중하다.

그 망자가 학생들이든 군인이든 노동자든 목숨은 모두 소중하다. 망자의 나이와 성별, 장소, 원인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도 중요한 만큼 이태원 참사나 고 채상병 사망사건도 중요하겠지만 낯선 타국에 와서 일하다 하루아침에 집단으로 사망한 사고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망자가 외국인 노동자라해서 대충 넘어가고 학생들이라 해서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이 바뀌며 50년 100년이 가도 변치 않을 추모시설을 대도심 한복판에 건립하는 것은 명백한 망자의 대한 차별대우다.

동물도 마찬가지겠지만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 그것이 사람이면 더한 것이고 그것이 낯선 나라에서 먹고 살려고 온 노동자라면 더더욱 엄숙하고 신중히 고인들을 모셔야 할 것이다.

1970년대 대한민국 탄광 근로자들이 너도나도 외화를 벌겠다며 독일의 광산을 향해 가던 시절이 있었다. 걸핏하면 낙반사고로 갱도가 붕괴되어 시커먼 죽탄을 뒤집어쓴 채 얼굴은 형체도 못 알아볼 만큼 처참한 몰골로 발견되던 날들이 있었다.

함께 출발한 간호사들도 눈물이 범벅이 된 채 같은 동포의 사체에서 석탄가루를 닦아내야 했던 시절, 필자 또한 초등학생이었기에 목격한 적은 없지만 당시 탄광지역에서 거주했던 만큼 친하던 옆집 아저씨가 독일에서 주검이 되어 돌아온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죄였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이제 한국에서는 험한 일 하는 한국인을 볼 수 없다. 아직 우리가 독일만큼 전 국민의 소득이 안정된 것은 아닐진대 외국인근로자들이 국내 모든 험한 일은 도맡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게 일하다 사고가 터졌다. 지난 24일 오전 10시 31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소재 일차전지 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사망자 23명이 발생했다. 국적별로는 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 라오스 1명 등이고 성별로는 남성 6명과 여성 17명이 사망했다.

부상자까지 총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화성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는 산업재해를 떠나 국가적 차원에서 강도 높은 조사가 병행되어야 하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동일사례재발방지, 현재 국내에 근무 중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관계 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할 문제다.

현재 재외동포·방문취업 비자는 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비자와 달리 파견 등 민간 고용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과 인력난이 심각한 산업단지 소규모 업체들은 직접고용 대신 파견 노동자를 활용하려는 점이 맞물려 파견 노동시장에서 이주노동자가 늘어났다.

특히 화재사고가 발생한 화성의 인근지역인 반월시화산업단지의 경우 파견 노동자 대다수는 이주노동자이며 국적별로는 재중동포, 고려인, 동남아시아 등의 순서로 많다. 서울에서 제조업이 쇠퇴하니 가리봉동에 있는 재중동포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파견 노동시장으로 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인력시장도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한국인의 경우 퇴직하고 마땅히 할 게 없으면 제조업이나 건설업계로 뛰어들었는데 젊은 외국인근로자들의 등장으로 이마저 밀려나고 있다. 어쨌거나 낯선 타국에서 죽음을 맞이한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번 참사는 이미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알려졌다.

가장 먼저 안전에 대한 기업의 예방실태와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손꼽힐 것이다. 잘했고 못했고는 다음 문제다. 일단 너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물론 2017년 12월 25일 발생한 제천 사우나 사건도 37명 부상, 29명이 사망했으며 인명 피해 중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하지만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2018년 1월 26일 경상남도 밀양시 가곡동에 있는 세종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51명이 사망하고 112명이 부상을 입었다. 나이가 많으면, 여성이면 집단 죽임을 당해도 대충 넘어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당시 대통령은 문재인이었다.

화재사고가 발생해도 광화문에는 촛불이 없었고 책임을 묻는 국민도 없었으며 탄핵의 이유도 되지 않았다. 같은 사건이라도 세월호 죽음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사건에 따라 정치권이 움직이면 모든 국민이 광분하여 천문학적 부상과 10년이 넘도록 추모를 해야 하는 지는 후대들에게 물어볼 일이다.

이제 결론을 말하자면 죽음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화성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사고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정부는 합동 분향소를 설치하고 전 국민은 한 달 두 달, 일 년이 걸리더라도 모두 추모하고 그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유족들의 트라우마까지 책임지는 보상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화재현장을 보존하여 동일사례 방지를 위한 안전교육시설로 지정하여 모든 근로자들이나 국민들이 연중 방문하도록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한 사후대책에 소중한 국민세금 수 천 억이 들어가더라도 아끼지 말고 투자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게 당연한 일이고 전 정부에서 수 백 번도 더 외치던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길이다. 산업현장이나 건설현장 등 모든 위험직종에서 사고는 그 누구도 장담하거나 배제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소중한 인명이 피해를 입었다면 이는 차별 없이 합당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중국에서 돈 때문에 낯선 한국 땅까지 와서 죽음을 당했음에도 잠시 뉴스의 일면을 장식했다가 이내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앞서 말했듯 모두 소중하다.

누구의 결정적 증인이 되었다가 자살로 죽어간 사람들도 살아남은 자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것이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나라는 파리가 사는 나라지 사람이 사는 나라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