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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22대 총선 투표합시다
[덕암칼럼] 22대 총선 투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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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어떤 후보자와 대담 도중 들은 말이다. 투표권 1장을 금전으로 환산하니 약 4,000만 원이라한다.

권리는 주어졌을 때 당연하듯 와 닿지 않지만 막상 박탈당하고 나면 소외감과 함께 그 허전함이 느껴지는 것 처럼 당장 눈에 현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국민 1명당 1표로 한정된 투표권을 아무렇지 않게 포기한다.

필자가 지역별, 성별, 연령별 투표 결과에 대해 굳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지금까지 역대 투표율을 보면 알 것이고 기권표가 얼마나 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 지표를 해석하자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정치권에서 볼 때 얼마나 해먹기(?) 쉬운 나라인지를 알 수 있다. 정당에 가입한 진성 당원을 포함해 권력이 나눠주는 떡고물에 길든 얌체들의 행진이 그러하고 지역감정을 부추겨 호남은 더불어민주당, 영남은 국민의힘 일색이니 차 떼고 포 떼고 남은 부동표들이 얼마나 나라의 미래에 영향력을 끼칠까.

이대로는 안 된다. ‘갈아보자 못 살겠다’는 표어나 구호는 광복 이후 달라진 게 없었다. 간혹 군사쿠데타의 성공으로 군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나 독재 타도 유신 철폐 등을 외치며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때도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지금은 그럴만한 의협심도 애국심도 심지어 양심도 실종된 시대가 됐다. 지나치게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탓에 가두시위에 앞장설 애국시민도 없고, 있다면 좌파·우파로 나뉜 군중들의 이념대립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는 투표로 심판해야 한다. 이미 사전선거로 30% 이상의 유권자들이 직접 투표장을 찾았다.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은 못 하는 민주주의 권리.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오래전부터 행해져 온 투표. 지도자를 뽑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선거에 대한 격언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내친김에 선거에 대한 각종 격언 중 몇 가지를 해석해 보자. 투표가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산교육인지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먼저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선거권의 중요성에 대해 200년 전부터 나온 말이 있고 나쁜 관료들은 투표하지 않는 좋은 시민에 의해 선출된다는 말도 100년 전에 나온 말이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 참여 거부에 대한 가장 큰 벌은 당신보다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고 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은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손님이다”라고 말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스스로 말고는 아무도 투표권을 빼앗지 못할 것이며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지 않는 결정은 지금 바로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의 판단에 달린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라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고, 투표는 모든 정치는 다수의 무관심에 기초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뜻이며 “모든 권력을 한 정당에 맡기는 것은 나쁜 정부에 보험을 드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이 말 또한 영원한 독재는 부패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며 견제할 야당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여야를 넘어 잘못을 지적하고 잘한 것은 홍보 해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진대 현재의 언론은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으니 이 또한 망국의 증세라 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투표는 총알보다 빠르고 총알보다 강하다”고 했으며 “생각만으로 반대를 표시할 수 없고 투표를 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이 말 또한 지금의 한 표가 모여 올바른 정치인을 뽑는 일이 될 것이며, 생각이나 마음만 갖기보다 한 표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선거만 끝나면 노예가 시작된다. 뽑힌 자들은 민주를 잊고 언제나 국민 위에 군림했다”며 선출되기 전과 후의 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꼬집었다. 실제 필자가 대담한 후보들 중 특권 내려놓기가 당연하다며 언제든 중간평가 받겠다고 큰소리친 당선자 중 단 한 명도 이를 실천한 의원이 없었다.

이 밖에 “당신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가 당신을 자유롭게 놔두는 것은 아니다”라며 조직사회에서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 룰을 피한다고 그 룰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님을 말하고 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훌륭한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말이 얼마나 올바른 정치인이 필요한지를 짐작게 한다. 민주주의 제도에서 유권자 한 사람의 무지가 모든 사람의 불행을 가져온다는 말은 누구나 한 표씩 갖고 있는 것이지 남녀노소 빈부격차에 따라 선거권은 평등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권은 중립이 아니라 부정한 권력탄생 사태를 방관하는 암묵적인 동조라는 점이다. 포기하지 말아야 반듯한 권력이 탄생할 수 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수십 년 겪고도 여전히 기권표가 많은 게 대한민국 선거의 현주소다.

백범 김구 선생은 “민주주의는 어느 당파의 특정한 당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언론의 자유, 투표의 자유, 다수결의 복종 이 세 가지가 결정됨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어떠한가.

언론의 자유지수는 문재인 정부 시절 180개 국가 중에 41위에서 43위로 윤석열 정부 들어 47위로 추락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언론인의 표현에 대해 권력으로 압박한 것이 원인이 됐다.

투표의 자유는 방관으로 이어져 대통령 선거 평균 74%, 국회의원 60%, 지방선거 52%의 투표율을 보인다. 끝으로 다수결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의 복종도 이뤄지지 않는다. 걸핏하면 촛불과 횃불을 들고 나와 집회 시위를 일삼고 국회 정문은 온갖 시위로 만장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악법도 법이다. 말이 많은 사람들은 투표는 하지 않고 불평만 많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