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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노인학대 예방의 날
[덕암칼럼] 노인학대 예방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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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예방’이란 말은 사전에 방지한다는 뜻인데 아무 일도 없었다면 사전 방지라는 말이 나올 수 없으므로 이미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미리 막아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필자가 말장난 치는 게 아니라면 이미 대한민국의 노인학대는 진행 중이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5일은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었다. 여기서 노인학대란 육체적·정신적 괴롭힘을 비롯해 경제적·사회적 고독감까지 더해짐으로써 이를 견디지 못한 노인이 학대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해당된다.

누군가는 가해자가 있을 것이고 상대적인 피해자가 있을진대 공개된 장소냐 특정 개인 간의 일로 그치느냐에 따라 학대의 개념은 천차만별이다. 그럼 노인이 왜 학대받는지에 대해 짚어보자.

가장 먼저 돈이다. 나름 잘한답시고 자식들이 한창 사회생활에 전념할 때 논밭과 부동산 또는 퇴직금이라도 털어 보태주면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그 돈이 채 소진되기도 전에 돈맛을 들인 자식들 또는 자식들의 배우자가 보채서라도 돈을 요구하게 되고 줄 때마다 최고라며 부추기니 모두 털어서 주는 정도가 아니라 살고 있던 집이나 기존에 불입하던 보험까지도 대출해서 주게 된다.

물론 엄청나게 기뻐한다. 이미 많은 부모가 일찌감치 밑천을 다 털어주고 늙어서 요양병원에 드러누워 있으니 누가 좋아할까. 자식들의 손에서 멀어지면 간병인의 손에 맡겨지고 더 나아가서는 12개 병상에 간병인 1명이 대·소변을 치우는 열악한 환경까지 내몰리게 된다.

하루 13만 원까지 간병인에 개인적인 용무까지 부탁할 수 있지만 통합간병에서 환자 개개인의 사정을 가족처럼 돌보기란 쉽지 않다. 손톱 밑에는 변이 끼고 몸에는 아무리 목욕을 시켜도 냄새가 나며 틀니를 씻어도 여전히 음식물은 별도로 세척해 내야 한다.

이때부터 보물이었던 부모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점차 장례절차와 부의금 분할에 대한 쟁탈전이 시작된다. 산 사람을 놓고 돈으로 으르렁거리는 볼썽사나움이 언제부터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그나마 장례식이란 절차도 아직은 진행 중이다. 이마저 낯선 풍경이 될 미래는 그리 멀지 않았다. 저출산으로 인해 친척이 없고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인해 단체가 없으니 지인도 없을 것이고 문상객 또한 없을 미래 자화상이다.

경제적으로 쓸모없는 노인들을 윤리나 도덕 개념으로 가치를 부여하기보다는 오로지 돈이 되느냐 마느냐로 본다면 현 세대가 늙어서는 어떻게 될까. 늙어서 대우받자는 게 아니라 늙었다고 산술적 가치를 잃었다고 버려진다면 늙어간다는 자체가 이미 징벌이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는 노인과 창창한 젊은이들의 미래를 똑같은 표로 투표한다는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투표권의 가치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같은 교통사고라도 고령의 운전자 사고를 집중적으로 보도해 면허증을 회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노인복지는 갈수록 줄어들지만 표만 된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예산을 퍼부어 준다. 이제 얼마 후면 애견 운동장뿐만 아니라 유치원, 학교, 호텔, 병원, 수영장 등 모든 분야에서 개를 받들어 모시는 일이 앞장서서 벌어지게 된다.

강아지에게 쏟아붓는 정성은 참으로 갸륵하고 끔찍하다. 물론 부모에게 쏟아붓는 정성도 기가 막히고 끔찍하다. 강아지 모시는 정성의 100분의 1만 부모에게 쏟아도 요즘 보기드문 효자·효부가 될 수 있는 이 나라.

이쯤 되면 미친 나라다. 이제 얼마 후면 모 국회의원이 애견 투표권을 발의하며 개도 어엿한 가족이라는 주장을 펼칠 것이며 미친 국민들은 전적으로 이에 동참해 가족관계 증명원에 올려야 한다고 맞장구를 칠 것이다.

부모 초상은 제쳐 놓아도 개 초상은 치를 것이며 부모 배는 곯려도 강아지 사료는 최고급으로 절대 끊이지 않게 될 것이다. 어쩌다 이 나라가 이런 개판이 되었을까. 개는 분명한 반려견으로서의 가치와 보호를 받아야 하며 각종 질병이나 기아로부터 보호의 대상이다.

개뿐만 아니라 소, 염소, 말, 돼지, 닭, 가축은 사육 목적이 각기 다르다. 고기를 얻거나 가죽, 농업, 우유, 계란 등 부산물도 있지만 개의 경우 인간과 가장 친근한 동물로써 목축업에 함께 동원되기도 하고 인간과 가족처럼 공감대도 형성한다.

그래도 개는 개다. 옷을 입히고 온갖 액세서리를 달고, 업고, 안고, 유모차까지 태워 가며 보육할 대상은 아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돈도 안 되고 냄새만 나는 노인들을 모두 보내버리는 안락사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자식들도 외면하거나 지금 같은 시대라면 자식도 없고, 아무 일도 못한 채 병실에 누워 멀거니 대·소변만 치워줘야 한다면 살 가치가 있을까. 병원에서 더 살고 싶지 않은 노인들 안락사 신청하라면 너도나도 동의서에 사인하고 무더기로 사망자가 급증한다면 인원이 줄어든 만큼 덜 벌어도 되니 젊은이들이 찬성하지 않을까.

멀고먼 미래 같지만 곧 30년 안에 다가올 미래다. 지금 설치는 한량들이 다 늙어 아무것도 못하는 시대. 이대로라면 집에서 키우는 개보다 훨씬 사회적 지위도 낮고 무엇 하나 쓸모가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적어도 지금 같은 행정이 안일한 현실을 방치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대안이 있을까. 당연히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공무원이 가만있어도 월급 나오는데 무엇 하러 일을 만들까. 당사자들은 절대 그런 일 안 한다.

연금 넉넉하게 나오고 다음 세대가 어찌 되든 현세대만 잘 먹고 잘 살다 가면 그만인데 일하다 실패하면 누가 감당할 것인가.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주 5일제 누가 만들었으며 주 4일제로 가자고 누가 말했던가.

그리고 그 말에 조용히 손들어주며 예산지원하고 그 대가로 표를 얻어 권력을 쟁취했다면 공범 아닐까. 더 나아가서는 공휴일 날 쉬지 못했다고 억울하니 대체 공휴일을 정했다. 자영업자나 경제인들이 정했을까.

아니다. 빨간 날은 놀 수 있는 사람들이 정한 것이고 그 가운데는 공무원이 있었다. 이제 노인들의 참된 가치, 연륜과 경륜에 대한 천문학적 가치는 점차 희석, 퇴색, 멸실되어가고 있다. 길을 잃고도 외면하고 있다. 노인학대 지금부터 제대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