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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칼럼] 예견되는 장례문화의 변화
[덕암칼럼] 예견되는 장례문화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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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오래전 일도 아니다. 약 50년 전 대한민국의 장례식은 꽃상여가 상징이었다.

온 동네 남자들이 모두 모여 상여를 만들고 발인 절차에 따라서 상여꾼들이 망자의 시신을 장지까지 운구하는 과정에서 소리꾼의 목소리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망자의 넋을 기렸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알려 주오라며, 망자의 집을 떠나 동네를 한 바퀴 돈다. 무덤에 가기 전까지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인생의 마지막 관문.

불과 30년 전만 해도 매장 형태로 지내던 장례 문화는 시대 흐름에 따라 화장 문화로 바뀌면서 상여꾼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이제 무덤을 볼 수 있는 일은 적어졌다. 추모 공원에 유골함을 안치하는 것이 전부인데 살아서도 층층이 형성된 사각 시멘트에서 지내다 죽어서도 유사한 형태의 시설에 안치 되는 게 전부다.

과거처럼 무덤에 엎드려 절하고 제사음식을 차려 다니는 것은 이제 전설에 불과하다. 평소 고인의 유품과 사진 등 간단한 소품이 전부이다 보니 찾아오는 유족이 아니면 사실상 특정 기간 관리해 오던 추모 공원 관리소 직원의 손에 맡겨지는 게 전부다.

하지만 그나마도 고인들이 대접받던 시절이고 이제 장례문화는 상조회사의 체계적인 시스템에 의해 사망일을 포함 발인까지 3일이면 끝난다. 기껏해야 하루 저녁만 밤새우면 운구차를 통해 화장터로 옮겨지고 또 다른 망자가 장례식 제단의 주인이 되어 영정사진을 올린다.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거면서 살아 생전 뭐 그리 탐을 내고 발버둥 치며 온갖 약재에 수술에 버텨가며 주변인들을 괴롭혔을까. 돈의 노예도 되고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출세 길을 향한 질주에 도덕이고 인륜이고 다 저버렸을까.

오늘은 달라져야 할 장례문화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필자가 10년 전에도 펼친 바 있으며 앞으로도 유사한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일단 유교문화와는 다소 상반되는바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의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는 대목에서 불편할 수 있다.

전제를 달자면 수년 전 임종 체험을 진행하며 많은 CEO들이 살아 생전 망자가 되어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실행한 적이 있었다. 관 속에서 상여소리를 듣노라면 평소 사랑하는 사람과 미운 사람들을 떠올리다 눈물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

반복되는 웰다잉, 임종 체험은 평소 생존할 때 진짜 장례식을 치러 봄이 매우 현실적이며 효율적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세월이 10년 쯤 흘러 이제는 이러한 장례문화가 저변에 확대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내세운다.

물론 장례 업계에서는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뛸 일이지만 필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대충 이러하다. 먼저 지금까지 장례문화는 고인이 사망하고 난후 유족 입장에서는 자주 겪는 일이 아니다 보니 대부분 상조회사에 위임한다.

상조회사에서는 숙달된 시스템을 가동해 부고장 발송부터 장례절차가 끝나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며 유족들은 고인의 상속문제로 한판 전쟁을 치르는 게 일반적인 관례였다. 유산문제로 소송을 하는 확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금액도 1억 미만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일반 시민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짐작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나마 유산전쟁도 이제 볼 수 없게 된다. 나눌 자식들이 있을 때 얘기이지 대부분 독자거나 그나마 평소 연락조차 안 하던 자식들이 장례식에 찾아온 것만도 효자·효녀가 된다. 여기까지가 유족들 분위기이고 다음은 문상객들이다.

지금도 조화나 봉투로 대신하는 문상이 과거에는 밤새 함께 상갓집의 불을 밝히며 때로는 화투도 치고 술도 마셔가며 고인에 대한 논공행상을 벌인 적이 있었다. 이제 문상객은 점차 줄었다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장례식장의 식사객 수는 손에 꼽을 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사람이 와야 대접하고 마시고 이야기를 하지 지금처럼 각자도생의 사회적 분위기에 회사, 단체, 친척의 문상은 한계가 있다. 꽃상여에 이승의 모든 한을 내려놓고 저승으로 가던 고인들의 화려한 시대는 지났다.

삼일장에 연탄공장에서 연탄 찍어내듯 장례식장과 추모 공원을 거쳐 가는 길은 이제 외로운 종점이 된다. 마음 주실 곳이라며 부고장에 적힌 계좌번호는 망자와 무관하다. 죽은 다음 조화가 수백 개 진열된들 망자가 볼 수도 없거니와 대감 개가 죽으면 문상은 있어도 대감이 죽으면 없는 게 문상이다.

대안을 제시한다. 죽은 다음 장례식장에 와서 눈물을 흘린들 망자가 알 수도 없거니와 이별에 대한 말 한마디 유언하나 남기지 못한 채 의미 없고 형식적인 장례 절차보다는 살아생전 일정 기간을 정해 문상객이 될 만한 사람에게 이별 통보를 하는 것이다.

한 달이든 일주일이든 살아생전 숨이 붙어 있을 때 첫사랑도 고백하고 미운 사람도 용서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미뤘던 동창이나 친구와 지인들과 조촐한 주안상도 마련해 쌓인 담소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누군들 털어서 먼지 안 나며 당사자도 모르는 허물이 없겠는가. 용서할 수도 있지만 용서받을 일도 많은 것이 인간사 새옹지마의 순리다. 가진 재물이 있다면 자식들 소송하며 싸우지 않게 골고루 나눠주든가 좋은 일에 보태어 덕이라도 쌓아야 한다.

한 푼도 못 가져갈 것을 움켜쥐고 죽어봐야 욕만 먹는다. 살아 생전 장례식은 장례식이라 부르지 않고 아름다운 이별이라 지칭하는 것이 어떨까. 망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 죄가 중하면 다시 사체를 꺼내 흩어버리는 부관참시라는 벌이 있었다.

물론 아무 의미 없는 일이고 이미 망자가 된 사람의 1년째 기일을 기리고 해마다 제사를 지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미 의료기관에서 임종을 선고받을 때쯤이면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다 내려놓고, 풀고, 잊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는 곳이 저승이어야 한다. 다른 나라 눈치 볼 일도 아니고 현실적인 대안에 공감이 된다면 누구랄 것도 없이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정작 사망했을 때는 아무도 부르지 말고 유족들만 엄숙히 보내면 되는 것이다.